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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락방
어느 새 또 봄이 오나 보다. 아직 바람이 차기는 하지만 낮에는 두꺼운 옷들이 무겁게 느껴질 정도다. 아침에 눈을 뜨면 몸이 무거운 날이 많아져 기운이 없다. 환절기니까 그렇다는 딸의 말을 들으며 그런가, 하다 작년에도, 재작년에도 비슷한 말을 들었던 기억이 났다. 봄이 오면, 조금이라도 날이 풀리면 할 일이 많았다. 한 번에 다 하려면 손이 바빠지니 한겨울용 두꺼운 옷들을 먼저 정리하고 이불도 덜 무거운 것으로 바꾸어야 하고 반찬도 좀더 입맛을 돋울 새콤한 것들로 준비해야 한다. 하지만 늘 마음 뿐, 아침에 일어나는 것도 버거운 날들 속에 내 의욕이라는 게 남은 게 있을까. 얼굴만 늙고, 피부만 늘어지면 얼마나 좋을까. 이렇게 몸이 늘어지며 하루가 점점 덧없어지는 게 늙는 거라는 걸 이제는 알겠지만 미..

웹툰 이 드디어 완결이 됐다. 다음 웹툰에서 연재될 때부터 정말 감동을 받으면서 봤고 카카오웹툰에서 시즌2가 연재되면서 챙겨보다 윤태호 작가님의 팔 부상으로 장기 휴재되면서 잠시 잊었었다. 그러다 완결 기념 이벤트를 하는 걸 보고 주말 내내 열심히 달렸다. 그리고 또 나는 삶에 대해 많이 배우고, 지금의 내 삶을 돌아보며 감동받았다. 특히 167수의 오과장의 독백은 많은 울림이 있었다. 조악하고 비루한 일상이지만, 그렇게 허덕이며 살아가지만 이것도 내 인생이라며, 내게 허락된 삶이라며 자위하고 만족할 줄 알았다. 지금의 나처럼. 하지만 장그래는 자신의 고민을 일상의 수고로움으로 치환하며 위로받기 거부하였고 자신이 어떤 사람인지, 무엇을 해야하는지를 잊지 않았다. 섬광 같던 통찰은 여전하고 사려는 더욱 깊..

간만에 영화관에 갔다. 엄마가 보고 싶으시다고...오랜만에 엄마와의 데이트였다. 주연 배우들만 보아도 대충의 스토리가 그려지는 영화였는데 예상보다 담백하게 그려져서 좋았던 거 같다. 중간중간 나오는 웃음포인트들도 잔잔해서 중간중간 자주 웃기도 했다. 그리고 영화를 보고 나서 들었던 생각은, 어쩌면 나는 노년의 삶을 그저 생존의 한 모습처럼 생각했던 게 아닐까, 싶었다. 죽음이라는 삶의 마침표 앞에는 노년이라는 과정이 있기 마련이다. 그 노년이라는 시기 역시 삶의 테두리 안에 있음이 분명한데 그 시기의 삶 역시 자유와 선택, 행복에 대한 추구의 욕구가 분명 있을텐데 왜 나는 그 욕망이 거세된 존재로, 노인을 생각했던 걸까, 싶었다. 우리에게 남은 자연이라는 환경 속에 리조트, 콘도라는 관광 시설들을 짓고 ..

"몰라, 왜 그런지. 그냥 너는 특별해." 잎사귀가 햇살 아래 반짝인다. 어디선가 매미 울음소리가 들려오고 살랑 바람이 분다. 칠월 초 더위에 선풍기가 윙윙 소리를 내며 돌아간다. 선풍기 바람이 그 아이의 머리칼을 흔들고, 이마는 땀으로 반짝인다. 그리고 이 순간을 나는 가만히 느끼고 있다. 적어도 오 년 전 그날 이후, 이렇게 온전히 여름을 느끼는 건 처음이다. - 소설의 본문 중에서- 책을 읽다보면 시각화된 표현들이 영상을 보는 기분을 자아내는 소설이었다. 사람들의 마음 소리가 들리는 '유찬'과 함께 있을 때는 고요를 찾아오게 해주는, 유찬에게 특별한 아이 '하지오' 유찬은 저주라 부르고 지오는 능력이라 부르는 사람의 마음 소리가 들린다는 설정은 자신의 생각이 다른 사람들에게 들리는 걸 혼자만 모르는..

한 아이가 죽었다. 학교에서 시체로 발견된 그 아이는 타살의 가능성이 높았고, 현장에서 발견된 벽돌에서는 죽은 아이와 절친이었다는 아이의 지문이 나왔다. 이 사건의 진실을 찾아가겠다는 기자의, 주연이와 서은이 주변인 인터뷰가 방송에 나가고 많은 사람들의 관심 속에 재판이 열린다. 얼마 전, 고 이선균 배우의 사건이 있어서였을까. 인터뷰이들의 내용을 읽으면서 나도 모르게 소설 속 인물들의 말을 사실과 의견으로 나누고 있었다. 하지만 소설 속의 인물들의 말이 그대로 방송되었을 때, 그 방송을 보는 사람들은 그들의 의견도 사실로 받아들이고 그들의 의견을 근거로 자신들은 범인을 찾았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사실이란 실제로 일어난 것, 객관적으로 참과 거짓을 구분할 수 있는 것이며 진실은 그 사실을 둘러싼 현상들을..

아름다운 시절, 벨 에포크(Belle Epoque). 정치적 혁명부터 경제적 혁명까지, 그야말로 격변기와 혼란기를 동시에 겪었던 프랑스가 대통령제의 도입으로 정치적 안정을 찾고, 1차세계대전의 발발 이전까지 문화적으로 찬란하게 피어났던 그 시절을 '벨 에포크'라 부른다고 한다. 처음에 '들라크루아'라는 이름을 들었을 때 어, 어디서 많이 들었는데 싶었다. 을 그린 들라크루아. 그 사람이 아닌 미셀 들라크루아는 파리의 '벨 에포크'를 주제로 왕성하게 작품 활동을 계속하고 있는 90세 현역의 화가였다. 일러스트에 가까운 그림들은 파리의 골목골목을 배경으로 사람들의 일상이 담겨 있어 아기자기하고 예뻤다. 벨 에포크,라는 말처럼 색감이 전반적으로 밝고, 비슷한 구도들이 자주 보이다보니 2전시실만 들어가도 그림들..

오랜만에 만나는 친구와 전시를 하나 보자고 약속했었고 내가 고른 후보군 중 친구가 선택한 게 전시였다. 12월 17일까자 무료 입장이었는데 우리는 그 전날 이 전시를 봤다. - 무려 작년이네! 치우침이 없고, 무리지음이 없으면 그것이 '탕평' 경종을 독살했다는 의심을 지속적으로 받았던 영조나 역적의 아들이라는 멍에를 씌운 노론과의 기싸움에 힘겨웠을 정조나 '치우치지 않고, 무리짓지 않으'려는 노력이 얼마나 지난한 것이었을지 잘 느껴졌다. 우리가 흔히 하는 '짜고 치는 고스톱'이라는 속된 말처럼 정조 역시 자신의 뜻을 관철시키고자 벼슬아치와 이런저런 계획을 세웠던 편지들, 승정원의 기록, 관련된 사람들의 일기 등이 재미있었다. 특히 정조는 악필로 유명했다는데 악필의 필체가 그 정도라면 현대인들은 무엇? 싶..

시기와 질투가 누군가를 괴롭힐 정당한 이유가 될 수 있을까. 악의적인 마음이 행동으로 표출되는 계기로 설명이 될 수는 있겠으나 그것이 정당하다고 할 수는 없을 거다. 또, 내가 질투하는 그 사람을 내가 만족할 만한 수준으로 끌어내린다고 해서 내가 그 사람보다 월등한 사람이 되는 걸까. 내가 만만하게 볼 수 있는 위치로 내려왔다고 해서 내가 시기하던 그 사람의 장점이, 내가 부러워하고 시기했던 그 부분이 내게 되는 게 아니다. 그리고 그 장점들이 그 사람에게서 사라지는 게 아니다. 어느날, 인터넷 상에서 자신이 개설하지 않은 프로필(아마 SNS와 비슷한 것인 듯)로 어려움을 겪게 된 율리. 그 프로필에 올라온 사진들과 글들로 인해 율리는 학교 안에서도 힘들어지고 율리의 외모에 호감을 가지고 있지만 자신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