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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월의 <청령포>

아직 오늘 중 2023. 5. 17. 20:29

아침부터 부슬부슬 비가 내렸다.

다니지 못할 만큼 많은 비가 내렸던 것은 아니라 우리는 다행이다, 하는 마음으로 청령포로 향했다.

단종이 유배되어 머물던 곳으로

많은 비에 이곳이 침수되어 지금의 장릉 자리로 유배지가 옮겨졌다고 하는데

지금도 강물이 불면 청령포로 들어가는 배가 운행되지 않는다고 한다.

새벽 무렵부터 빗소리를 들었기에 조금 걱정을 했는데

다행히 배는 안전하게 운행되고 있었다.

배를 기다리는 사람들
청령포에 두 번째 방문이었는데 햇살이 짱짱하던 첫 방문 때보다 오히려 비가 부슬거리는 봄이 더 창령포에 어울리는 것 같다.

저 가운데 소나무들이 빡빡한 머리숱처럼 보이는 저 안에 단종의 거주지였던 곳이 있다.

한껏 초록이 세상을 점령하고 있는 오월 속에 단종의 거주지였다는 곳 옆에는

단종의 시중을 들던 궁녀와 무사들의 거처가 있었던 모양인데

그 안에 마네킹들이 앉아 있어서 날씨와 함께 좀 무섭게 느껴졌다.

우리는 단종어소를 시작으로 관음송-노산대-망향탑-전망대를 돌아봤다.

매일 같이 노산대에 올라 한양을 바라보았다던 단종의 마음이 무엇이었을까.

세손으로 교육을 받고 12살의 나이에 임금 자리에 올라 만 16세의 나이에 사약을 받고 죽은 비애의 군주.

자꾸 단종을 미약한 애취급하는 소설이나 영화, 드라마들이 많다보니 

요즘의 초등학생 수준 정도로 생각하는 경우가 많은데 사실 그렇지 않다는 것.

성종이 13세의 나이에, 숙종이 14세의 나이에 즉위했던 것을 보면 12살의 즉위가 그렇게 이르다고 볼 수 없고,

숙종 역시 수렴청정 없이 바로 왕의 업무를 보았던 걸로 본다면

삼촌이 조카 재산 다 빼앗고, 네가 어려서...라는 변명거리를 만들어 역사로 박제해 버린 것만 같다.

세손으로 책봉된 그 순간부터 왕제로서 모든 교육을 받으며

자신이 다스릴 나라에 대한 원대한 꿈도 꾸었을 총명했던 청소년 왕. 

세손으로 태어나 모든 영광과 섬김을 누리다 꿈과 모든 일상을 빼앗긴 채

유배된 단종에게 가장 애처로웠던 것은 무엇이었을까.

전망대에서 바라본 풍경

느긋하게 감상에 젖어 있기에는 빗방울 떨어지는 양이 조금 걱정스러웠다.

발걸음을 재촉해 내려오니 또 조금은 수굿해지는 빗줄기.

저마다 고유 번호를 가지고 있는 노송들 사이를 걸어 나왔다.

유난히 진한 초록도, 

발걸음이 빨라진 사람들의 뒤로 남는 고요도 무척 좋았다.

두번째의 인상이 처음과는 달랐으니

다음에 다시 오면 청령포의 어떤 얼굴을 보게 될까...

궁금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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