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웹소설과 '짐짓'

아직 오늘 중 2023. 2. 3. 21:42

작년부터 야금야금 읽기 시작했던 웹소설...

많이 읽었던 건 아닌데 내가 읽었던 소설들만 그랬던 걸까...

아무 생각 없이 읽다 특이점(?)을 발견했는데 바로 이 표현을 많이 쓰더라는 것.

 

"짐짓"

 

- 속마음이나 본뜻은 그렇지 않으나 일부러 그렇게

 

라는 뜻을 가진 부사이다.

많은 책을 읽는 편은 아니지만 현대소설들에서는 자주 눈에 띄는 표현은 아니다.

사어(死語)는 아니지만 고전소설에서 훨씬 자주 봤던 표현이었는데

인터넷이라는 최첨단은 매체를 이용한 웹소설에서 자주 보이니 좀 신기하기도 했다.

그런데 문제는 그 의미를 정확하게 모르고 쓰는 것 같더라는 것.

'짐짓'의 유의어로 '일부러'가 국어 사전에 나와있기는 하지만 

일부러가 가진 '실없는 거짓으로'과 유사한 의미를 가진 것이지

'일삼아 굳이'의 의미와는 유사성이 없는데 

문맥을 보면 웹소설의 작가들은 '굳이' 혹은 '무척', '매우'의 맥락으로 쓰는 경우가 많았다.

 

여주인공을 염탐하는 비서가 자신의 숨긴 의도가 드러날 상황에서  '김 비서는 짐짓 당황했다'라고 표현되어 있거나

오랜만에 만난 부모가 친부모인지 의심하는 아기를 표현하는 부분에서 '그녀는 짧은 팔로 짐짓 도도한 세뇨리따처럼 팔짱까지 꼈다'라고 표현되어 있다.

문장에서 모두 '짐짓'이 가진 '거짓으로', '일부러'라는 의미가 사라졌다.

 

신철이는 매우 당황스러웠지만 선영이 앞에서 그런 빛을 보이기 싫어 짐짓 천연스레 말하였다.(다음 - 국어사전의 예문 중)

 

이렇게 쓰는 게 맞는 표현인데 말이다.

 

말이 생겨나 다른 의미를 갖게 되는 경우는 많다. 우리가 학생 때 배운 '언어의 역사성'이 그렇다고 말해준다.

어쩌면 이런 잘못된 쓰임이 '짐짓'이라는 말에게 새로운 의미를 부여하여 그 생명을 더 길게 늘릴 수도 있을 것 같다.하지만 그 근원이 말을 다루는 작가들이 정확한 의미를 모르고 잘못 쓴 것이라는 건 좀 아이러니한 일이 아닐까...

 

인터넷 소설에 대한 선입견이 무색할 만큼 잘 쓰여진 소설들도 있었는데잦은 맞춤법 틀림, 조사의 잘못된 사용, '짐짓'과 같은 부정확한 어휘의 사용들은 좀 아쉬웠다.작가들과 계약한 회사들의 편집실 능력이라고 할 수도 있지만작가라면 기본적으로 국어에 대한 기초지식은 있어야 하지 않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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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

국립국어연구원의 사전을 확인할 일이 있어 겸사겸사 <짐짓>의 의미를 확인했는데

하나의 의미가 더 있었다.

아닌 게 아니라 정말로.  - '생각했던 것과 마찬가지로'의 의미, 과연을 대신 쓸 수 있다고 한다.

(예) 소문난 맛집의 음식을 먹어보니 짐짓 맛있었다.

------------------------------------- 한 말 안에 상반되는 것으로 보이는 두 개의 뜻이 함께 있다니, 좀 신기하다. 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