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웹툰 <바니와 오빠들>

아직 오늘 중 2022. 9. 20. 11:27

카카오웹툰에서 월요일에 연재되는 <바니와 오빠들>

연재 초기에는 잘 몰랐고 좀 유치하다 싶은 제목에 딱히 끌리는 만화는 아니었다.

로맨스물에다 이미 응답 시리즈로 남편 찾기 미션이 걸린 예능인 듯 예능 아닌 예능 같은 드라마에 익숙해져서 내용에 대한 흥미도 별로였다. 

그런데 또 첫인상 별로였는데 우연히 알고 보니 정말 좋은 애라 오래오래 친구가 되는 경우도 있는 것처럼

이 만화 역시 그랬는데 한번 보기 시작하니 하루 종일을 바쳐 정주행을 하는 내가 있었다.

- 정말 한가로운 휴일이었다.

 

주인공인 바니는 너무 사랑스럽고

통통 튀는 유쾌함과 사람에 대한 따뜻함을 가진 여주인공으로 그 나이 때 할법한 고만고만한 고민을

열심히 진지하게 들여다보고 생각하는 인물이라 무척 좋았다. 

주변의 인물들 누구와 연결되는 로맨스의 해피 엔딩이 아니더라도

연애 역시 인간 관계의 한 과정임을 생각한다면

연애를 통한 고민들을 통해 좀더 성장하는 한 사람으로서의 바니를 만나는 해피엔딩도 좋을 거라 생각했다.

 

그런데 새로운 시즌이 시작되면서

이 사랑스러운 캐릭터가 작가님의 연애학개론을 설파하기 위한 도구로 보이기 시작했다.

자신과 가장 잘 맞는 남사친이었고 자신이 그렇게 궁금했던 원의 과거 이야기를 듣고

바니가 하는 말이... 

'멋있네, 멋있다. 전 ...분이랑 사귀던 같은 공간에서 계속 나를 봐왔는데...... 전공도 똑같고...안 떠오를 수가 없었겠다.

 

힘들었겠다, 상상도 안 돼...

 

그런데도 나한테 좋은 마음이 생겼다는 것도 대단하고, 나랑 이렇게까지 된 것도 대단한 결심이라 생각하고 진짜 상상도 하기 힘들어, 나한테 이런 얘기해주기까지...'

 

말만 보면 공감하는 내용이지만 비꼼과 비난을 동시에 담은 반어적 표현들이 이게 다른 사람의 아픔에 공감 잘 하던 바니가 맞나 싶었다.

물론 과거 이야기는 하나도 안 하고, 감정 표현 해버린 상황에 가장 설레는 타이밍에 그런 이야기하는 원이가 얍삽하게 느껴질 수도 있지만 자신 역시 진지하게 설레었고, 열이에 대한 허전함을 채울 대타로 생각한 게 아니라 진지한 감정이었다면 잠시 말을 멈추고, 다음에 대화하자고 하는 게 더 바니다웠을 거다.

자기의 자존감이 약해서 상황을 모면하는 것이 아니라

자기 입으로 뱉은 '힘들었겠네'가 진심으로 상대에 대한 공감이었다면 '네가 지금 양심있냐'는 말을 저렇게 비비꼬아서 할 수는 없는 거 아닐까. 

뭐 그 이후에 그렇게 따지면 자기도 양심없는 거라 자책하고,

나중에 '나는 네가 좋지만 네가 남친을 만들었으니 나도 솔로 있기는 뭐했는데 나 좋다는 여자 있길래 그 여자 만나면서 할 거 다 해보다가 네가 남자친구랑 헤어졌다길래 몸에서 오는 짜릿한 반응을 확인해볼 겸 나도 여친 정리하고 왔으니까 나랑 자러 가자'는 현이에게는 '대단하시네'라는 비꼼없이 '설레네'이러면서 관계 먼저 하러 가는 바니를 보면서 참 허탈했다.

학창 시절과는 완전 딴판으로 변했거나 혹은 그 때 그 시절에서 1cm도 성장하지 못하고 그 때 그 정신연령 그대로를 유지하는 동창을 만난 기분이랄까.

이렇게 가면 제일 먼저 나가 떨어진 경영학과도 다시 나타나서 연애 조금 하다가 그만 두고

열이 다시 귀국해서 다시 만나 연애하는 걸로 끝나는......

그래서 연애란 이런 거다, 라는 작가님의 연애학 개론을 펼치는 것으로 끝날 것 같다, 이 웹툰은.

초반에 나오던 제리의 서사는 바니의 남자 갈팡질팡에 제대로 나오지도 않고....

잃은 것은 로맨스요 얻은 것은 연애학개론이다, 로 끝날 것 같은 이 웹툰은 이제 더 이상 챙겨 읽을 것 같지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