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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오백년째 열다섯>

아직 오늘 중 2023. 10. 8. 16:50

 

10만부 판매기념으로 표지가 바뀐 모양이다.

단군신화와 여러 설화들을 차용해 새로운 판타지를 만든 이야기가 재미있었다.

영화 <트와일라잇>의 흡혈귀 가족과 늑대족이 생각나는 야호족과 호랑족의 이야기도 재미있었고

시간의 굴레에 갇힌 듯 흘러가는 시간 속에 같은 나이에 갇혀버린 '가을'의 고민도 잘 와 닿았다.

가을의 친구들은 어른이 되지만 가을은 어른이 될 수 없다. 가을의 몸은 야호가 되었던 열다섯 살 때 그대로다. 직업을 가질 수도 결혼을 할 수도 부모가 될 수도 없다. 오백 년째 가을은 열다섯이고 앞으로도 영원히 열다섯이다.

 

몸은 그대로이지만 5백 년을 살았으면 그동안의 많은 경험을 통해 성숙하고 성장하고 열 다섯에 멈춘 자신의 모습에 대한 정체성의 고민은 어느 정도 해결이 되지 않았을까, 싶었는데

소설이 진행될수록 첫 열 다섯을 겪는 소녀의 모습 그대로여서 좀 당황스럽기도 했다.

앞부분에서는 나름 오랜 시간을 살아온 사람으로서 삶에 대한 이야기가 나왔는데

남친의 문제에 물불가리지 않고 감정에 충실해지는 그 모습에 

몸이 안 자라면 정신도 성숙되지 않는다,는 설정인가 싶었다.

또, 오백년인데 그 시간동안 자신에 대해서도, 자신을 둘러싼 야호나 호랑족에 대해서 지나치게 아는 게 없는 것도 

이 세 모녀는 꽃밭에 사는 건가, 싶은 부분이었다.

자신이 살린 남자가 알고보니 호랑족이었고, 그 이유 때문에 자기 딸이 죽을 뻔했고 또 그렇게 야호족이 되었다면

그 엄마 입장에서는 호랑족에 대해 좀더 철저히 알아보고, 경계해야겠다는 생각이 드는 게 당연한 게 아닐까.

우리는 안 죽으니까 나날이 축제다, 뭐 이런 분위기였던 걸까.

아니면 우두머리 격인 '령'의 보호만 있으면 살 수 있어! 우린 즐긴다!

이런 거였을까.

열다섯이라는 경계선에서 오백년을 살며 자신의 정체성에 대해 고민을 했다면

당연히 자신의 구슬에 대해서도, 야호족에 대해서도 소설의 설정보다는 더 알아야하지 싶었다.

 

<사랑의 블랙홀>이라는 오래된 영화도 생각났었는데

취재차 내려간 지방 도시에서 자신에게만 시간이 반복되는 경험을 하는 주인공의 이야기였다.

코미디여서 주인공이 그 시간과 장소에서 벗어나기 위해 온갖 노력을 다하는데

다음 날 아침이 되면 어김없이 똑같은 날짜, 똑같은 장소에서 시작이다.

결국 주인공은 그 반복되는 패턴 속에서 내면의 변화를 겪게 되고 좀더 성숙하게 된다는 이야기였다.

 

영원을 살 것처럼 오랜 시간을 살아가는 야호족이라지만

인간에서 시작한 가을이네의 경우, 더구나 살해의 위기에서 살아난 사람들이라면

오백년의 시간을 놀이동산 다녀온 듯 써 버리는 게 아니라

더 그럴싸한 경험들을 많이 쌓아두었다거나

자신들을 지키기 위한 정보들을 더 많이 알고 있는 게 정상이지 않은가 싶었다. 

 

 

개연성이나 인과 관계를 따지지 않고 

이야기에 푹 빠져서 '작까님'을 따라 읽어간다면 

재미에서만큼은 뛰어나다는 생각이 들었다.

새로운 사건을 암시하며 소설이 끝났고, 이미 2권까지 나왔으니 

2권을 읽다보면 1권의 부족해보였건 설정이나 개연성들이 보완될까?

그건 읽어봐야알겠지만

올해 안에 2권을 읽을 것 같지는 않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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