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락방
영화 <더 크리에이터> 본문
참 오랜만에 영화관에서 본 영화.
무슨 정보가 있어서 골랐던 건 아니고 영화를 보러 갔을 때 시간이 맞았다.
그리고 운이 좋게도 영화는 재미있었고, 나름 생각할 거리도 있어서 좋았다.
내가 봤던 영화들 중에서 인간이 만들어낸 로봇과의 관계에 대한 질문을 던졌던 영화는 스필버그의 'A.I'였다.
인간은 자신들이 만들어낸 로봇을 어디까지 책임지고, 어디까지 사랑할 수 있는가.
뒤로 갈수록 힘이 빠졌던 걸로 기억하는데
<크리에이터>는 '인간다움'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질문을 던졌고, 역시 뒷힘은 좀 부족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미국 로스앤젤레스에서 핵이 터지고,
A.I들의 고의적 폭발로 발표가 되면서 서구에서는 생활에서 사용되던 모든 인간형 로봇들을 폐기해버린다.
하지만 이 로봇들을 수용안 뉴아시아에서 로봇을 중심으로 반란군이 형성되고
미군은 이 반란군의 주축이며 AI의 설계자였던 나마시타, 창조자(크리에이터)를 찾아 반란군을 붕괴시키려고 한다.
위치를 알 수 없는 나마시타를 찾기위해 언더커버로 투입된 조슈아는 반란군의 정보원이 마샤와 사랑에 빠지고
자신에게 통보되지 않은 미군의 습격으로 마샤와 아이를 잃었다.
무기력한 생활을 하던 조슈아에게 나마시타가 새로 개발한 무기를 제거하고, 그 설계 파일을 가져오라는 명령이 내려오고,
마샤가 살아있고, 그녀를 다시 찾을 수 있을지 모른다는 희망을 안고 뉴아시아로 향한다.
노마드라는 절대적 무기를 앞세워서 다른 나라의 영토를 수색하고, 마음껏 무기를 퍼붓는 전쟁 장면에서
명분만 있으면 어느 나라건 쳐들어가는 미국의 모습이 여실히 보여졌고,
무조건 로봇은 해롭고 없애야한다는 말을 주워섬기는 군인이 로봇은 그저 프로그래밍된 기계일 뿐이라고 말하거나
동료의 등에 붙은 폭탄을 제거하려고 하다 함께 터지는 인간의 모습과
아이들이 숨은 곳으로 몸을 숨기지 못해 결국 폭탄을 맞게 되는 로봇의 모습에서
과연 인간과 로봇의 차이는 무엇일까,에 대해 생각하게 되었다.
영화 <매트릭스>에서 프로그램(기계)와 다른 인간다움을 '선택'에서 찾았고
이 영화에서는 A.I 로봇과 인간의 갈등을 통해 '인간다움'은 인간에게만 있는 것이 아니라
사랑이나 책임감, 인류애 등을 A.I 로봇들도 충분히 느낄 수 있다고 이야기하고 있다.
어쩌면 더 따뜻한 마음을 가진 인물들이 A.I중에서 더 많았다.
살아있는 사람들도 로봇과 함께 한다는 이유로 무차별 폭격을 가하는 인간들이
식물인간이 되어버린 마샤의 생명장치를 끌 수 없는, 자신들에게 주어진 의무에 최선을 다하는 로봇들보다
더 인간적이라 말하기는 어려웠다.
창조가 인간의 영역이라면
한 관점에 얽매여 더 이상 성장하지 못하는 사람은 더 이상 새로운 것을 만들어낼 수 없을 것이다.
3대 나마시타에 알피가 정해진 이유도 바로 이 부분 때문이 아닐까 싶다.
결국 하나의 과점에 머무르지 않고 지속적으로 성장할 수 있는 '창조자'가 인간다움의 대답이 되는 것이 아닐까.
그 '인간다움'에는 진정 인간이라는 생명체인지 아닌지는 그다지 중요한 문제가 아닌 것 같다.
가볍게 본다면 가볍게 볼 수 있고
영화의 여운을 즐기고자 한다면 좀더 생각해 볼 수 있는
좋은 영화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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