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웹툰 <나쁜 X>

아직 오늘 중 2025. 12. 17. 22:49

카카오에서 화요일에 연재되는 '나쁜 X'

161화로 본편 완결, 4주 휴재 후 외전 연재가 이어진다니 1월부터 연재가 재개될 예정이다.

우연히 독특한 그림체가 눈에 들어 보기 시작했다

엄청난 몰입감에 푹 빠져 읽었던, 그러나 100화가 넘어가면서 댓글로 스토리를 따라가다

본편 완결에 일찍 사뒀다 후회한 소장권과 대여권을 모두 써버렸다. 

한마디로 사랑으로 시작해서 애증(?)으로 끝난 웹툰이다. 

<왼쪽은 15세 이상가 버전, 오른쪽은 19세 이상 버전 홈 그림이다. 확실히 후반부 그림들은 선이 좀 얇아졌다.>

 

시작은 선물함의 무료 대여권이었다.

선물함에서 자주 보이기에 무슨 작품이기에 이렇게 밀어주나 싶어서 작품 홈에 들어갔다. 

1화부터 자극적인 사건으로 시작되는데 스토리보다는 개성있는 그림체가 마음에 들었다.  

크로키가 떠오르는 거친 선이 여타 로맨스 만화의 그림체보다 개성적이었다.

그러다 회가 지나면서 그림체가 추상화처럼 바뀌는데 나는 종종 에곤 쉴레의 그림을 떠올리곤 했었다.

에곤 쉴레의 그림은 구상화인데도 대상의 본질을 추구하며 거칠고 날카롭게 그려진 거친 느낌에서 추상화의 느낌을 많이 받았는데 이 작가의 그림 역시 대충 그린 듯한 인물의 표정이나 동작들이 오히려 더 구체적으로 다가오기도 한다. 

어쩌면 생략된 그림의 부분들을 상상력으로 채워 넣기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이런 요소는 서사에서 두드러졌다.

 

남친의 바람, 응징, 삼각관계 등의 흔한 클리셰 범벅의 서사는 평범하다.  

그럼에도 이 작품이 가진 흡입력은 무척 크다.

그 이유는 인물들의 심리에 대해 그다지 설명하지 않기 때문이지 않을까 싶었다. 

독자들이 이미 익숙한 클리셰 범벅의 이야기를 끌어가면서

인물들에 대한 심리 부분은 독자들의 배경지식과 상상으로 메워가도록 유도하며 

서사의 부족한 개성을 독자가 직접 만들도록 하는 것 같았다. 

뻔한 사건 구성임에도 인물들이 왜 저런 행동을 하는지, 왜 그런 선택을 하는지

계속 생각을 하다보니 인물에 대한 이입도가 커지고 서사가 무척 진지하게 느껴진다..

또, 한번씩 인물의 과거사나 마음이 독백체로 서술되는데 그 독백은

이미 인물과 밀접해진 상황에서 K-장녀로 가족에 희생적이며 

자신의 능력으로 상황을 헤쳐나가고, 남주에 대한 애정을 포기한 채 유희로만 연애를 즐기는 여주에 대한 안타까움을 극대화한다. 

더구나 요즘 인기 많은 자기 일은 확실하게 잘 하는 능력캐.

그래서인지 여주의 능력이 돋보일 때마다 '역시 너다', '사랑한다' 댓글들이 엄청 많았는데

그 능력으로 여주의 모든 단점을 '발라버리는' 상황을 보다보니

아, 이 사회는 정말 능력만능주의에 빠져있구나 싶었다. 

나는 잘한 거로 못한 것을 덮을 수 없고 못한 것으로 잘한 일을 깎을 수 없다는, 

잘한 건 잘한 거고 못한 건 못한 거다 주의다보니 

어떻게 능력으로 관계에서의 부적절함을 덮나, 그 댓글들에 공감이 가지 않았다.

 

독자들이 어떻게 하면 이 캐릭터를 사랑할 수 있을지,

어떻게 표현하면 이 흔한 서사로 독자들의 몰입도를 끌어낼지

고민하고 생각했을 작가의 기획력에는 진짜 감탄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 능력은 진짜 최고!!!

 

하지만 내 에너지를 이렇게까지 써가면서 봐야할 만큼 작품성이 높은가, 생각한다면 

노력 대비 효용은 현저히 떨어지는 작품이라 생각한다.

물론 웹툰은 재미가 최고지, 라고 생각하는 사람에게는 아마 최고의 작품이리라 생각한다.

 

그러나 지적, 심적 에너지를 써야하는 작품이라면

재미가 단순 감각적인 것을 뛰어넘는 어떤 것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별 생각없이 편하게 읽었던 '미생'같은 작품들이 주는 재미와 비슷한 것들을 얻을 수 있어야 시간도 들여, 돈도 들여, 내 감정도 들여, 내 상상력도 들여 읽는 맛이 있지 않겠는가. 

그런 측면에서 이 웹툰은 서사에 빈틈이 많다.  

아무리 사연이 있다지만 진실한 마음 없이 연애의 단맛만 즐기는 여주의 미성숙함.

중학교 때부터 크게 망해서 어디가 바닥일까 싶게 계속 나락의 길에 있는 가계에도 불구하고

수석 입학, 매 학기 수석, 수석 졸업을 달리는 여주가 연애는 쉬지 않고 계속 이어가고

그 관계에서 상처받고 연애에 가벼워졌다고 이야기하는데 솔직히 그런 상황에 처한 사람들은 연애를 할 여력이 없다.

정말 시간이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인지 여주가 연애하는 이유가 육체적 관계에서 느껴지는 따뜻함, 포근함, 말초적 쾌락들을 단기에, 싼 값(?)에 즐길 수 있기 때문이 아닐까. 좀 괜찮은  사람을 만나서 쉽게 몸부터 허락하면 별다른 투자없이 얻을 수 있는 것들이니까.

이렇게 생각하면 정말 양아치에 싸구려 같은 여주이지 않은가.

본인이 자신을 '연애의 단맛만 먹는 나쁜 년'이라고 생각함에도 나이 30이 넘도록 그 태도를 바꾸지 않고 연애를 주구장창했다는 게 좀 어이가 없었다. 

사람은 자신이 나쁘다고 자각하면 고치려고 노력하는 존재가 아니던가.

아무리 성욕이 넘치는 몸을 가졌다 하더라도 헬스에 미친 캐릭터라 야근으로 두세 시간밖에 못자는 상황에서도 운동은 빠뜨리지 않는다는 설정인데, 그 정도로 피곤하고, 운동하면 성욕은 좀 감소하지 않을까.

캐릭터를 구성하는 외피에는 충실했을지 몰라도 

사람에 대한 인문학적인 소양이나 이해도가 얕다는 아쉬움이 많이 들었다.

작가가 사회에 대한 관심이나 이해도 부족하다는 생각이 들었던 첫번째 에피소드는

여주가 서로 호감을 느끼고 있는 남주2와 밤새 술을 먹다 필름이 끊기는 장면이었다.

아침에 눈을 뜬 여주가 제일 먼저 한 일은 쓰레기통을 뒤적이며 '했나 안 했나' 확인하는 부분이었다.

그리고는 남자가 왜 필름 끊긴 자기와 성관계를 하지 않았는지 의아해한다.

마치 그게 당연한 일이라는 듯.

이 웹툰은 15세 이상가 버전이 있는데 이 장면은 먼저 연재를 시작한 15세 이용가에 그대로 그려져 있다.

둘은 연인 관계도 아니며 설령 연인 관계라 하더라도 여주가 의식이 없는 상태에서 이루어진 성관계는 폭행으로 간주될 수 있다. 

많은 성폭행범들이 상대를 만취 상태로 만드는 것부터 시도하는 사회에서 청소년들도 볼 수 있는 웹툰에서 저런 장면을 여주의 캐릭터를 보여주기 위한 장치로 설정을 했다는 것 자체가 사회적 감수성이 떨어지는 게 아닐까.

 

서사의 재미를 극대화하는 요소인 갈등을 다루는 방식도 단편적이어서 나중에는 어떤 갈등이 발생해도 '결과는 뻔하지'라는 생각이 들었다. 

차근차근 빌드업울 해가며 해결 과정이나 결과에서 카타르시스를 기대하게 만들어 몰입도를 높이고

결과는 찜질방안에서 받는 따뜻한 아메리카노같은 쾌감을 준다.

대부분 말로 '조지는' 걸로 끝나는데 그렇게 이성적으로 대화하고 끝낼 거면

주변 사람 둥원해서 계략은 왜 세우는 건지 모르겠다.

그냥 처음부터 말로 '조지고' 증거 내세워서 꼼짝못하게 만들면  될 걸

밀쳐져서 바닥에 엉덩방아 찧고, 뺨 맞고, 애인을 선 자리 내보내서 결혼 기사 뜨게 만들고, 폭행당해서 응급 수술까지 받는

아무리 봐도 제 살 깎아먹기 밖에 안 되는 과정을 왜 거치는 건지 모르겠다.

물론 그 과정에서 클릭 수 폭발하고, 댓글창 난리나면서 상위 랭킹에 올라가서 작가는 신이 나겠지만

작품 자체만 놓고 보면 아무 의미도 없는 자극적 장면들만 몇 주에 걸쳐 늘려 놓는 것 뿐이다. 

그러면서 자극적인 갈등들만큼의 시원한 자극적 결말을 원한 독자들을 향해 

"뭘 바란겁니까 독자님. 그런 해결 방법 옳지 않죠? 어떤 것이 성숙한 해결 방법인지 제가 알려드리지요",

말하는 것처럼 여주는 상대 입장, 상황 다 이해해주면서 '이걸로 충분해' 하고 마무리한다.

누구는 그런 결과가 시원하지 않다고 하지만 그래 여주야, 네가 정말 성숙하구나 이런 댓글들이 많이 달린다.

나는 이런 식의 반복적 패턴이 불쾌했는데 작가가 독자 머리 위에 앉아

'호호호, 이번에도 낚였네, 독자들아 이건 원래 사이다가 의도되지 않은 거였어'

라며 웃고 있는 것 같고, 심리적으로 불안정하고 인간 관계에 미숙한 여주한테 충고듣는 기분이 별로였다. 

-그렇게 성숙한 사람이 남의 진심 가지고 놀면서 너만 좋은 연애를 했니?

나는 너처럼 사람 진심 가지고 노는 일은 안 해, 너나 잘 하고 살아라, 여주야.

아니꼬운 마음이 들기도 했다.

 

이 작품을 보고 '현실적'이라는 댓글을 다는 걸 많이 봤는데

나는 이 작품이 현실성을 작가의 편의대로 가져다 쓴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차피 모든 작품들은 현실을 반영하고, 기반으로 한다고 하더라도

작품 세계 안에서 작가가 구현하고자 하는 주제에 맞게 재구성된다.

그 재구성의 과정에서 작가는 일정한 논리와 질서를 부여하는데 이 작품은 그 질서가 좀 어지럽다.

우리나라에서 최고의 미대하면 서울대나 홍대가 제일 많이 떠오르지 않나?

이 웹툰에서 여주와 남주1은 제일 좋은 미대를 졸업한 것으로 되어 있다.

그런데 회상 장면에서 신입생 환영회 플랫카드에 '청강대 에니메이션학과'가 써져있는데

작가의 모교에 대한 자부심과 애정은 알겠으나 자신이 설정한 '최고의 미대'라는 익명성은 깨져 버린다.

그리고 혼돈이 온다. 웹툰이 K문화의 붐을 타고 해외로 수출도 많이 되는 현재 애니메이션 학과도 급부상 중이고

청강대 역시 미대 입시에서 주목받고 있다해도 아직 <최고의 미대> 타이틀은 다른 대학에 있는 게 아닌가.

또, 야근을 매일매일 하는 설정에 경제적 어려움을 겪는 여주가 굳이 서울에 오피스텔 얻어 독립해 나와 있는 것 역시 어색했다.

중소기업 다니는 상황에서 집에 대출도 남아 있고, 툭하면 부모님들에게 생긴 일들을 갈망하느라 몇 백씩 깨지는 사람이

한 달이면 몇 번 들어가지도 않을 오피스텔을 구한다고?

그것도 대출을 받지 않으면 힘들 것처럼 보이는, 반지하도 아니고 옥탑도 아닌 복층 오피스텔을?

무슨 돈으로? 연예인도 아닌데?

여주의 문제 해결 마지막도 현실적이라면 현실적이다. 

갈등 역시 현실에서 있을 법한 것들이다.

그러나 누가 현실적인 마무리, 이성적인 훈계 몇 마디 하자고 

그렇게 주변 사람 동원해서 작전을 짜고, 계획을 세워서 토끼 몰이 하듯 상대를 몰고

그 과정에서 더 생기는 모든 손해는 자신이 감당하며 갈등을 극대화하는, 비효율적이고 에너지 소모가 큰 일을 한단 말인가.

그렇게 비현실을 동원해 갈등을 크게 부풀려놓고 결론은 '정신 차려'로 끝내는 그 패턴 역시 

작품의 편의성을 위해 그때 그때 가져오는 룰이 일관성이 없기 때문에 가능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실망했던 또 하나의 요소는 '성장'인데 

어린 시절 트라우마로 여주는 계속 악몽에 시달리거나 가위에 눌린다. 

그런 상처를 극복하기 위해서 심리 상담도 있고, 그 트라우마를 건드리는 자신의 내적 요소를 찾아 생각하는 시간도 필요하다.

하지만 서사가 진행되는 동안 이런 노력을 전혀 하지 않는다. 

인물의 심리 상태를 전달하는 것에 인색하다보니 안 보였을지 모르겠지만

그런 암시도, 한두컷의 그림도 보여지지 않는다.

단지 오랜 시간을 함께 한 남주1과 만나면서 심리적인 안정감을 찾는다는 설정인데...

물론 자신을 온전히 사랑해주는 사람을 만나면 심리적 상처의 치유가 가능하겠지만

그렇게 보기에는 귀신으로 그려지는 그 상처는 무척 심각하고 크게 보여서 누군가의 사랑만으로 치유가 가능할 것 같지 않았다. 

결국 여주의 트라우마는 남주1과의 사랑의 장애물이면서 여주가 남주1에게 얼마나 안정감을 느끼는가를 보여주는 도구로만 설정되었을 뿐 성장의 요소는 아니었다는 거였다. 성장물을 좋아하는 나로서는 이 부분이 작품에 대한 애정이 급격히 식는 계기이기는 했다.  

물론 여주가 자기 삶의 중요함을 깨달았으니 성장한 게 아니냐, 할 수도 있지만 그렇게 따지면 이 세상 어느 서사가 성장물이 아니겠는가. 더구나 이 작품은 카카오페이지에서는 '성장물'을 작품 키워드로 설정해 놓았는데 엄지 손톱 만한 요소로 '이게 오른팔입니다'라고 말하는 꼴인 거 같다. 

 

게다가 막판에 재벌들 이야기 나올 때는 굳이 저 이야기를 가져와 진행하는 게 필요했을까, 싶었다. 

또 이 웹툰은 원래 15세 이용가로 시작했지만 중간에 19세 버전이 나왔고, 19세 버전이 일명 대박이 터지면서 이야기 전개 자체가 19세 이용가에 맞춰진 것 같았다. 아무리 옷입고, 수위를 낮춘다 하더라도 인물의 심리가 제대로 설명되지 않는 상황에서 섹스 상황에서 오가는 심리적 요인들이나 상황들이 그대로 15세 버전에서 그려지는 것은 적당하지 않은 것 같았다. 키스신만 나오면 채널을 돌리던 아버지들처럼 내용 자체가 15세 이용가에 맞지 않는데 옷만 입혀놓으면 괜찮다는 생각인 건지 작가의 생각이 궁금했다. 

 

인기가 좋으니까, 사람들이 재미있어 하니까, 

그걸로 내 작품의 목적은 달성했다, 라고 생각한다면 뭐라 할 말은 없다.

하지만 인기도 좋고, 사람들도 재미있어 하니까 좀더 의미있는, 서사의 논리에 부족함이 없는, 

사람에 대해 더 고민하여 내용이 알찬 그런 작품이면 더 좋지 않을까 싶다.

 

어쨌거나 웹툰계의 임성한 작가를 만난 것 같았다.

일 년 남짓은 진짜 이 웹툰이 올라오는 화요일이면 기분이 좋을 만큼 푹 빠져 있었던 작품인 만큼

재미있었던 것은 사실이다. 

단, 막장이 내 취향이 아니었을 뿐. 

작품에 대한 깊이는 희망사항일 뿐 요구 사항은 될 수 없으므로 이 작가의 차기작을 보게 될 것 같지는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