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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피프티 피플>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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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정판이 나오면서 표지가 바뀌었다.
소설의 제목이 등장인물의 수일 거라 예상은 못 했다. 정확히는 이들이 각 개 에피소드의 주인공일 거라는 예상을 못 했다.
사실 제목이 되지 못했지만 여러 에피소드에 자주 나오는 인물들까지 포함하면 인물 수는 더 많고
다양한 불행과 외로움과 위로와 사랑의 이야기가 들어 있었다.
무척 재미있게 읽었는데 함의하고 있는 상징성들이 가볍지 않아 그 역시 좋았다.
동화적인 희망이나 낭만적인 위로가 아니라 우연적인 다행과 조금은 불안한 희망이라, 개인의 의지로 빚어내는 위로라 더 좋았다.
통신이 발달하면서 네트워크 다섯 단계면 전 세계인이 알음알음 아는 사이로 묶인다던가.
이 소설에서 그걸 아주 잘 보여주는데
병원 직원들, 환자들, 그 주변인 이렇게 세 부류로 묶을 수 있는 등장인물들이
대부분 인적네트워크 안에 알게 모르게 들어가 있고
이들이 생활하는 곳에서 일어나는 문제들은 비윤리적이고 비인간적인 시스템이 원인이다.
가습기 살균제 피해자 유족, 화물 연대의 파업, 건축 비리,
'효율'이라 쓰고 자본이라 읽는 사회에서 고효율을 위해 계속 갈아넣어지는 사람들의 문제를
각 개인의 입장에서 그려내고 있어, 추리소설처럼 큰 그림을 맞춰나가는 재미가 있었다.
그 많은 등장인물들 중 가장 매력있는 사람은 할아버지 의사인 '이호'였다.
가난한 집에서 태어나 박사가 되고, 그 분야의 입지적인 존재가 되었지만
그는 자신의 삶을 자신의 능력으로 이루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남들은 자신의 불우한 환경을 자기의 능력으로 개척하고, 그 과정에서 타인의 도움이 조금은 있었다고 하지만
이호는 자신은 정말 운이 좋게 많은 사람들의 도움을 받았고, 그 운을 살릴만한 능력이 있어 다행스러웠노라 생각했다.
그런 마음이 이호를 겸손하게 만들고, 그 겸손은 오히려 젊은 축들의 존경으로 돌아왔다.
자기의 능력으로 엘리트가 되고, 내가 잘나 누리고 사는데 내가 왜 사회에 관심을 가져야 하나.
하는 대다수의 사람들과는 다른 생각을 가진, 정말 '어른'의 모습이 아닌가 싶었다.
그러려니 넘어가는 비윤리적인 것들에 대해 넘기지 못해 자신의 의도와 달리 문제를 일으키는 현재에게 이호는 이렇게 이야기한다.
-생략- 우리가 하는 일이 돌을 멀리 던지는 거라고 생각합시다. 어떻게든 한껏 멀리. 개개인은 착각을 하지요. 같은 위치에서 던지고 사람의 능력이란 고만고만하기 때문에 돌이 멀리 나가지 않는다고요. 그런데 사실은 같은 위치에서 던지고 있는 게 아닙니다. 시대란 게, 세대란 게 있기 때문입니다. 소 선생은 시작선에서 던지고 있는 게 아니에요. 내 세대와 우리의 중간 세대가 던지고 던져서 그 돌이 떨이진 지점에서 다시 주워 던지고 있는 겁니다. 내말 이해합니까?
어쩌면 우리 사회가 좀더 나아지는 과정이 저런 게 아닐까 싶었다.
그러려면 좀더 많은 사람들이 돌을 던져야 한다는 문제 의식에 동의하고, 돌은 던지지 않더라도
자신의 안위만을 생각하며 관망하지 말고 그 돌을 지켜보기라도 해야하지 않을까.
불타 버린 건물을 회피하지 말고, 왜 매번 겨울만 되면 비슷한 화재 사고가 나는지
왜 매번 있어야 할 안전 장치들은 미비한지
왜 매번 진정한 책임자는 나타나지 않는지
왜 매번 우리는 이 모든 일들을 타인의 일이라 생각하며 잊어버리는지.
퍼즐을 맞추듯 재미있게 읽으면서 따뜻하고 좋았다.
주인공은 아니었지만 유쾌한 진선미 씨가 등장하는 에피소드들도 재미있었다.
하지만 다 읽고 난 후 전체적인 밑그림이 가진 울림이 있어 아주 흐믓한 마음으로 책장을 덮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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