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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산도, 그 봄 가득한 섬 - 구들장논 본문
범바위에서 한 정거장 떨어진 곳에 있는 구들장 논을 보러가기로 했다.
계단식 논과는 달리
평지가 없는 청산도에서 논을 개간하기 위해 경사면을 깎다가 치우지 못할 큰돌이 나오면
그 돌에 맞추어 구들을 놓듯 다른 돌들로 평면을 맞추고 그 위해 흙을 깔아 만들었다는 구들장 논.
그래서 온돌의 열기가 도는 이치를 이용해 물길을 만들어 아래쪽 논으로 물이 흐르도록 만들었다고 한다.
위 이야기는 이 다음에 들른 돌담마을 식당에서 주인 아저씨에게 들은 이야기였고
버스 정류장에 내리니 인간이라고는 나 하나였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게 이제 비는 제법 거세지고 있었고
우산받은 손으로 카메라를 조작하기에도 버거울 만큼 바람도 심심치 않았다.
뭘 어쩌는 곳인 거지?
방황스러울 때 눈앞에 작은 표지판이 보였다.
청산도의 슬롯길 표지만이었다.
구들장논길을 따라 걸으면 다음에 가려고 했던 돌담마을에 도착한다고 되어 있었다.
그래? 그럼 걷지 뭐.
지리산도 그렇지만 이곳 역시 슬로길은 동네 주민분들이 다니시는 길을 이은 곳이다.
구들장논길은 이렇게 논두렁같은 비포장 도로인데
사실 나는 비포장 도로를 좋아한다.
더구나 이 곳은 풀도 많고 돌은 별로 없어서 걷기에 아주 좋았다.
그래서였을 것이다.
운동화가 젖어서 양말이 따라 젖고 그 물기가 발목까지 올라오는데도 그게 별로 나쁘지 않았다.
심심할 만하면 물가의 오리들이 제풀에 깜짝깜짝 놀라며 날아오르는 바람에 나 역시 깜짝깜짝 놀랐다.
놈들 때문인지 자꾸 화장실은 가고 싶어지고
바람은 심해지고
비도 거칠어져 총체적 난국에 처했다.
카메라 조작은 힘들고 간단한 줌마저 활용할 수가 없어 대충 찍다보니 건진 건 위 사진 하나 뿐이지만
내 마음 속에는 그 걸음의 속도와 바람의 감촉과 풀냄새와 오리 울음 소리가 가득하다.
화장실만 해결할 수 있다면 정말 완벽한 행복이었는데. 화장실은 구들장논길이 끝나고 없었다.결국 구들장논길 끝, 길 건너편에 자리한 마을회관 화장실을 슬쩍 빌려 썼다.ㅎㅎㅎㅎㅎㅎㅎㅎ살다보면 누구나 한 번 씩 막 들어가는 화장실 한 곳 쯤은 알고 있는 거 아닌가요? ㅎㅎㅎ아님 말구요......ㅎㅎ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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