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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산도, 그 봄 가득한 섬 - 범바위 본문
여전히 아침부터 날씨는 좋지 않았다.
바람이 휘몰아치던 밤을 생각하면 많이 얌전해진 날씨였다.
그래도 오후에는 갠 다던 일기 예보를 간절한 마음으로 믿기로 했다.
아침에 펜션에 들른 주인 아저씨에게 순환버스 타는 곳을 물었더니 친절하게 태워다주셨다.
4월에만 운행한다는 순환버스는 청산도의 유명 관광지들을 도는 버스로 40분마다 한대씩 다녀서
표를 한 번 사면 모든 코스를 다 돌 때까지 이용할 수 있다.
첫 코스는 범바위.
범 모양의 바위가 전자기의 위력을 발휘한다는 곳이었는데 비도 비지만 안개가 끼었다.
청산도 어디를 가도 흔한 유채꽃이지만 그 예쁜 노랑이 질리질 않는다.
범바위까지는 제법 걸어야 한다.
셔틀버스를 이용할 수 있지만 나는 그냥 걷기로 했다.
안개 자욱해지는 길 사이로 맑은 새소리가 들리는 게 나쁘지 않았다.
길을 걷다 돌아보면 내 뒤로도 안개가 가득했다.
천천히 어떤 인기척도 느껴지지 않는 그곳을 걷다보니
운무들이 이룬 물방울이 여기저기서 듣는 소리가 들렸다.
보이지 않는 길가 풀섶 너머에서는 동물의 기척도 들리는 것 같아
조금 무서워질 무렵
눈 앞에 등불보다 밝은
벚나무가 나타났다.
그 자태가 너무도 환하고 예뻐 나도 모르게 웃음이 났다.
고마워.
이렇게 이 자리에 예쁘게 있어줘서 정말 고맙다.
그런데 왜일까.
눈물이 났다.
앞으로도 뒤로도 나를 지울 듯 채워지는 안개 속에서 눈물을 흘리는 것은 무척이나 편안한 일었다.
안개속을 걷는 것은 호젓합니다, 라고 했던
중학생 때 읽었던 헤세의 싯구가 떠올랐다.
'호젓하다'
이 말의 의미를 그렇게 깨달아가며 도착한 범바위.
소리만으로 아래가 바다라는 것을 알 수 있을 뿐
가시거리가 이삼십미터는 넘는 것 같지 않았다.
활짝 핀 개나리 뒤로 범바위의 얼굴만 바라보다 내려왔다.
내려오는 길 역시 안개는 좋은 길동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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