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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네가 누구든 얼마나 외롭든>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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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네가 누구든 얼마나 외롭든>

아직 오늘 중 2010. 11. 15. 12:07

 

 

"......거기에 희망이 무엇이라고 나와 있었지? <투란도트>에 말이야."

베르크 씨의 말에 정교수는 답했다.

"밤이면 인간의 마음 속에서 날개를 폈다가 해가 뜨면 사라지는 환상. 매일 밤 태어났다가 매일 아침 소멸하는 것."

"결국 만지면 부서지는 나비의 날개 같은 것이지. 현실이 잔혹할 때, 희망이란 아무짝에도 소용없는 장난감 같은 거야. 그래서 나는 모든 희망을 버린 사람들에게 새로운 삶을 찾을 수 있도록 도와주는 거야. 희망과 함께 자신의 모든 과거를 부정하는 사람들을."

 

 

 

 

 

해변으로 바투 밀려왔던 바닷물이 모두 빠져 나가고 어둠이 내리자, 그는 "지금까지 혼자 가슴에 묻어뒀을 뿐, 누구에게도 해본 일이 없는 이야기지만 레이는 곧 일본으로 돌아갈테니까"라고 단서를 붙이더니 자신의 연애담을 들려주기 시작했다. 그 이야기만은 레이도 거의 알아들을 수 있었다. 무슨 뜻인지 모르겠는 부분에서는 자신의 기억들을 떠올렸다. 사랑은 누구에게나 하나씩 있는 것이므로 관심만 기울이면 서로 이해하지 못할 바가 없었다. 듣는 내내 레이는 이야기 속에 등장하는 두 사람의 은밀한 사랑이 세상에 알려질가봐 가슴을 졸여야만 했다. 그 놀랍고도 가슴 아픈 이야기가 모두 끝났을 때, 레이는 그 이야기에 나오는 여자가 말한 것처럼 두 눈을 감았다. 바닷바람이 얼굴로 와 부딪혔다. 파도 소리가 귀에 가득했다. 우주 저편에서 별빛들이 해변으로 쏟아져 내렸다. 모든 게 처음인 것처럼 이 세상을 느끼려고 하는 것이 얼마나 슬픈 일인지 레이도 알 것 같았다. 오랫동안 레이는 두 눈을 감고 있었다.

 

 

 

 

 

"자, 눈을 감아봐. 그리고 가만히 느껴봐. 그 막막한 어둠이며, 계속해서 들려오는 파도소리며, 얼굴로 불어오는 바람을, 마치 지금 막 태어나 처음으로 그것들을 느끼듯이."

그는 시키는 대로 눈을 감았다. 눈을 감자, 자신이 심하게 몸을 떨고 있다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 그리고 멀리서 파도소리가 들렸다. 상희가 말한 대로 얼굴로 불어오는 바람도 느껴졌다. 정말 마치 처음인 것처럼. 막 태어나 바다를 바주한 갓난아이처럼.

"지금 네가 느끼는 그 세상이 바로 너만의 세상이야. 그게 설사 두려움이라고 하더라도 네 것이라면 온전히 다 받아들이란 말이야. 더 이상 다른 사람을 흉내내면서 살아가지 말고."

파도 소리는 점차 상희의 연구실에서 들었던 쇼스타코비치의 왈츠를 떠올리게 했다. 그는 혼자서 흥얼거렸다. ...... 그도 이제는 자신의 두려움이 무엇이었는지 알 수 있었다. 그는 언제나 혼자일 뿐이었다. 거기 희망은 없었다. 한기복을 만나기 전에도 혼자였고 만난 뒤에도 혼자였듯이, 상희를 사랑하기 전에도 혼자였고 사랑한 뒤에도 혼자였듯이. 희망 없이 그는 자신의 두려움을 바라봤다.

 

 

 

 

 

검열관은 그를 책상 앞에 세워놓고 이런 편지는 외부로 보낼 수 없다고 통고했다. 캠프로 온 뒤 처음으로 그는 그들에게 맞섰다. 그는 자신이 캠프의 규칙을 준수했음을 검열관에게 주지시켰다. 검열관은 그의 편지를 천천히 소리내어 읽었다. 검열관은 '나'와 '너', 그리고 그 사이에 있는 '사랑해', 이 세 단어를 또박또박 끊어서 말했는데, 그게 오히려 더 우스꽝스럽게 들렸다. 그는 모멸감을 느꼈다. 그는 '나'와 '너', 그리고 '사랑해'를 여덟 번이나 반복한 까닭에 대해 설명을 요구받았다. 그는 스물다섯 단어 규칙 때문이었다고 대답했다.    ......

하지만 검열관은 그의 설명을 납득하지 못했다. 멀리 떨어져 만나지 못하게 된 '나'와 '너', 그 사이를 이어줄 동사는 오직 '사랑해'뿐이른 사실을. 검열관은 이틀 동안 그를 부동자세로 세워놓았다. 이틀 동안, 물도 음식도 먹지 않고 부동자세로 서 있으면서 그는 사랑이 아니라 증오에 대해 생각했다. 모두에게 사랑은 하나씩이다. 그 검열관도 자신의 사랑은 깊이 이해했다. 하지만 검열관은 그의 사랑에 대해서는 이해하지 못했다. 그 점에서 20세기의 사랑은 인류에게 돌이킬 수 없는 죄악을 저질렀다. 검열관이 그의 사랑을 이해하지 못하는 것처럼 그 역시 검열관에게도 사랑하는 사람이 있을 것이라는 사실을 이해할 수 없었다. 그런 의미에서 '나'와 '너'가 '사랑해'라는 동사로 연결된다는 것은 틀린 말이었다. 대부분의 경우 '나'와 '너'는 증오를 통해 서로를 이해했다. 사랑은 수없이 많으나, 증오는 하나일 뿐이었으므로.

 

 

 

 

 

"하루에 사십이해일천이백만경 번 이산화탄소를 배출해내는 인간들로 가득 찬 이 지구에서도 우리가 살아갈 수 잇는 까닭은 이 180이라는 숫자때문이다. 인간만이 같은 종을 죽이는 유일한 동물이라는 걸 알아야 한다. 하지만 그럼에도 인간만이 웃을 줄 아는 유일한 동물이라는 것도 알아야 한다. 180이라는 이 숫자는 이런 뜻이다. 앞으로 네게도 수많은 일들이 일어날 테고, 그중에는 죽고 싶을 만큼 힘든 일이 일어나기도 할 텐데, 그럼에도 너라는 종은 백팔십 번 웃은 뒤에야 한 번 울 수 있도록 만들어졌다는 얘기다. 이 사실을 절대로 잊어버리면 안 된다."

그렇게 말하고 잠시 말을 멈추더니 할아버지가 말했어.

"그러니 네가 유명한 작가가 된다면 우리 인간이란 백팔십번 웃은 뒤에야 겨우 한 번 울 수 있게 만들어진 동물이라는 사실에 대해 써야만 하는 거야."

 

 

 

- 김연수 장편소설 <네가 누구든 얼마나 외롭든>, 문학동네, 2008년-

 

 

처음 이 소설을 읽었던 건 2년 전이었다.

그리고 다시 이 소설을 읽었다.

처음 읽었을 때 느꼈던 희열 비슷한 감정은 없었지만 처음에는 보지 못했던 부분들이 눈에 보였다.

그럼에도 그의 문장들은 좋았고

소설 속 이야기의 진지함도 좋았다.

다음에 다시 읽으면 그 때는 어떤 부분들이 다시 내게 다가올까?

이런 기대감을 갖게 한다.

다음에 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