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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우리에게 내일은 없다>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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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우리에게 내일은 없다>

아직 오늘 중 2010. 11. 8. 23:37

참 꿀꿀한 제목이다.

 

형에게 가장 먼 미래는 언제야? 내일...

 

오늘이 지나야 다가오는 내일은 그들에게는 정말 멀어 보인다.

기수와 종대.

오늘이 지나야 다가오는 내일이,

오늘이 힘겹기만한 그들에게 먼 것은 당연한 일일지도 모른다.

 

이 영화를 보면서 여러가지 생각을 하게 되었는데

90년대 한참이었던 <아버지>담론도 그 중 하나였다.

사회를 의미하는 아버지,

이 영화에서 아버지로 비춰지는 사회는 종대에게 상처만을 강요하는 곳이었다.

어린 종대에게 화투를 가르치던 생부와

종대의 엄마에게 상처를 주고, 간접적이나마 그 상처를 기수와 종대에게도 전염시켰던 사우나 방 사장 역시

종대에게 바람직한 사회가 되어주지 못했다.

그러고보면 이 영화에서 비춰지는 사회는 병들었거나

어른이 없는 사회이다.

그 안에서 종대에게 버팀이 되어주는 건 기수 뿐.

하지만 형의 위치에 있는 기수 역시 어른은 아니다.

그는 단지 좋은 사람이 되기 위해 죽을 힘을 다해 오늘을 사는,

그 오늘에서 벗어날 수 없는 한 청춘일 뿐이다.

폐허에 가까운 도시의 한 구석에서 종대에게 상처를 입히고 자신 역시 어느 한 곳에 피폐한 상처를 가진 기수.

나는 그 기수에게 너무도 마음이 쓰였다.

 

형은 왜 살아? 네가 출세할지도 모르니까.

나는 좋은 사람이 되고 싶어요. 그런데 이제 너무 힘이 들어요.

그럼 형은? 너는 내 꿈이야.

 

힘이 들다는 기수에게 음악학원 원장은 말한다.

꿈을 이기는 현실은 없다.

기수의 꿈은 좋은 사람이 되는 거다.

좋은 사람이 되고 싶은데 어렸을 때 자신의 선의로 상처를 입은 종대가

자신의 앞가림도 못하는 형이

온전치 못한 가족에 마음의 병을 얻은 조카가

기수에게 업혀 온다.

쓰러질 듯, 쓰러질 듯 위태로운 기수의 발걸음은

그래도 자신의 꿈을 향한다.

좋은 사람이 되는 것.

그러기 위해 내린 기수의 선택은 무척 마음이 아팠다.

 

이제 훌륭한 소년이 되고 싶다고 밝은 얼굴로 말하는 종대.

영화는 그렇게 밝은 얼굴로 대답하는 종대의 환한 웃음으로 마무리된다.

하지만 왜 <우리에게 내일은 없>는 걸까?

그건 아프고 나약하고 상처받은 종대가 훌륭한 소년이 되기에는

내일과도 같은 어른이 없기 때문은 아닐까.

방황하고 상처받고 좌절하는 청소년을, 청춘들을 이끌어 줄

그들에게 모델이 되어줄 어른이 없는 사회이기 때문은 아닐까.

 

종대가 훌륭한 소년이 되기를 바랐다.

그렇지 않으면 기수가 너무 가슴이 아플 것 같기에.

그렇게 되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드럼 연주도, 기타 연주도 무척 좋았던 영화.

마지막 종대가 아이를 데리고 떠나는 장면의 영상미도 좋았다.

골목골목 무척 많이 돌아다니고 정했을 장소들도 장면장면에 적절하게 잘 떨어진다는 생각이 들었다.

 

햇살이 밝은 날, 화창한 오후에 보지 않으면 좀 우울해질 수도 있는 영화.

하지만 감상하기에 참 좋은 영화라는 생각이다.

기수 역으로 나왔던 그 배우.

참 마음이 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