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락방
영화 <제 8일의 밤> 본문

좀 무서울까봐 여유로운 낮시간에 보자 싶어서 기다리다 본 영화.
연기 못하는 사람은 단 한 명도 없어서 몰입감이 높을만도 했는데 공포를 차근차근 쌓아올리기에는 실패작이고 - 감독도 공포를 노렸던 건 아니지 싶고 - 긴장감 역시 부족하기는 했다.
코로나 세상 2년차여서였을까....
영화에서 말하는 '악'이 도래하는 세상이 뭐 저렇게 대단해진다고 저 난리야 싶은 생각이 들었다는 건
서사적 개연성은 머리로 이해하지만 그 개연성이 공감되지는 않는다는 이야기일 거다.
나름 준비된 반전이 있는데
이상하게 전혀 놀랍지도 않았던 건 긴장감이 부족해서였을 거다.
영화를 보면서 예전에 봤던 '궁녀'가 떠올랐는데
드물게 영화관에서 본 공포영화였는데, 영화가 끝나고 나올 때 출구에서 들었던 다른 관객들의 감상이
만약 이 '제8일의 밤'을 영화관에서 봤다면 똑같이 들렸을 것만 같아서였다.
영화 '궁녀'에서 궁녀들의 생존에 대한 강력한 '염'이 공포의 정체였다면
이 영화에서 공포의 정체는 '번민'과 '번뇌'이다.
불교식의 윤회사상-심오해서 잘은 모르지만-에 따르면 과거 내가 만든 삶의 궤적이 '업'을 만들고 이 업이 바로 번뇌의 정체다.
사람이 이 업을 없애지 못하면 그 업으로 인해 윤회를 거듭하게 되는데
어찌보면 이번 생의 내 업이 결국 미래의 내 불행이 되는 것이다.
그렇다면 번민의 근원 역시 업이다.
이렇게 생각한다면 이 영화에서도 공포-보다는 두려움이라는 말이 더 어울릴 것 같은데 -의 근원은 결국 '업'이라고 보는 게 맞지 않을까.
정화스님이 청석 스님과의 연에서 '분노'를 내려놓고 자신의 역할을 다 할 수 있었던 이유 역시
용서와 참회로 자신의 업을 끊어냈기 때문이다.
애란 역시 '고마움'이라는 업으로 인해 스스로 제물이 되고, 또 제물이라는 업에서 '선택'을 통해 벗어날 수 있었다.
그런데 이 '업'은 여러 번 반복이 되면서도 잘 부각되지 않다보니 영화가 어째 밍밍한 상태로 흐르다 끝난 것만 같다.



그래도 배우들의 연기는 어떤 구멍도 없이 좋았고
큰 기대 없이 본다면 한가한 오후를 보내기에 나쁘지 않다.
밤에 봐도 그다지 무서울 것 같지는 않을 것 같다.
'보다, 듣다, 읽다' 카테고리의 다른 글
드라마 <아신전 - 킹덤 외전> (0) | 2021.08.04 |
---|---|
영화 <리틀 포레스트> (0) | 2021.07.26 |
소설 <작은 것들의 신> (0) | 2021.07.11 |
산문 <민주주의가 어떻게 민주주의를 해치는가> (0) | 2021.07.01 |
중드 <운색과농>, <보스가 결혼하재요> (0) | 2021.06.26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