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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 <내 언어에 속지 않는 법>

아직 오늘 중 2019. 10. 28. 20:38




"한국어에 상처받은 이들을 위한 영어 수업"


이 책의 메인 카피인 모양이다.

다른 책을 검색하다 눈에 띄었고, 소개글이 인상적이라 도서관에서 대출을 했다.

주변 도서관에는 없어 상호대출 예약까지 걸어서 빌린 책인데.......


그냥 살까, 고민을 잠시 했었는데

안 사기를 잘 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우선, 저자가 한국어를 모국어로 하는 한국인임은 분명하지만

한국어에 대한 이해도가 일상어 이상의 정도인지 의심스러웠다.


저 메인 카피를 보고 내가 기대했던 건

영어권에는 없는 한국어의 어느 부분......이 설명되리라 생각했다.


그런데 책을 읽으면서 우리나라에는 없는(?) 영어 표현은

"나쁜 버릇에도 이름이 있다" 파트 정도에서였다.

강박장애- 우리는 흔히 스트레스 때문이라고 말하는 -로 인해 나타나는

손톱 깨물기, 손톱 밑살 뜯기, 거스르미 뜯기, 입술 각질 뜯기에 대한 부분이다.

증상에 대한 이름이 없으니 그것이 자신을 해치는 행위라는 자각을 하지 못한다는 설명이었다.

이 정도 설명이 설득력이 있으려면 최소한 저런 버릇을 가진, 강박증을 가진 사람들이 우리나라에 비해 미국에 적다는 연구결과나

기사 정도는 인용을 해야하지 않을까?

미국인이라도 일상적으로 잘 쓰지 않을 것 같은 더마틸로마니아, 트리코틸라마니아 같은 용어의 있고 없고의 차이가 아니라

이 책에서 저자가 말하는 대다수의 문제들은

사회에 대한 인문학적 소양이 조금만 있으면 깨달을 수 있는 것들이다.

그것을 무슨 영어권에서 바라보면 깨달을 수 있다는 듯이 적어놓은 것들이 나는 내키지 않았다.


한 초등학교에서 담임선생님이 학생들에게 평등의식을 심어주기 위해

반말을 권장한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

(이 책의 저자가 말하는 식이 이런 식이다. 인터넷 검색을 했다, 이런 내용이 있었다, SNS에 의견을 물었다, 이랬다....)

영어식으로 서로 반말을 하면서 상하의 위계의식을 줄이겠다는 취지였다.

상하복명식의 군대식 사회분위기가 유교라는- 유교에서 들으면 상당히 억울할 - 미명으로 치장되어 있는 것을 나 역시 좋아하지 않는다.

당연히 바뀌어야할 사회현상이라 생각하는 바다.

문제는 왜 반말이어야 하는 걸까? 였다.

서로 존대를 하면 될텐데 왜 굳이 반말을 선택한 걸까?

그 선생님은 영어권 표현에는 존댓말이 없다는 것만 생각한 게 아닐까?

정말 영어에는 존댓말이 없을까?


이 책의 저자가 문제로 지적한 "예쁘게 말해"라는 말은 나도 종종 쓰는 표현이다.

저자는 예쁘게,라는 표현에서 여성에 국한적인 말이라고 생각한 모양인데

나는 이 표현을 남녀노소 가리지 않고

상대에 대해 무례하고 배려가 없이 말하는 모든 사람들에게 쓰는 표현이다.

예쁘게 말해.

엄마, 좀 예쁘게 말해주면 안 되요?

오빠, 예쁘게 말해.


우리 사회에 퍼져있고, 이미 충분히 담론화 되어 있는 내용들을

굳이 영어, 한국어를 끌어와서 영어 사용자가 되면 그런 문제들이 눈에 들어온다는 식으로 말하고 있는 게 좀

웃겼다.


한 언어에는 그 언어권의 사용들의 문화가 담겨 있고, 역사가 담겨 있고, 자연이 담겨 있다.

그러므로 한 언어를 알아가는 것은 모국어만 사용하는 것과는 다른 시각을 가질 수 있다는 것에 충분히 공감한다.

하지만 '한'을 '억울'과 동일시하는 무모한 단순함으로

어떻게 두 개의 언어를 비교, 그 차이의 고갱이를 말할 수 있을까 싶었다.

우리가 그 언어를 사용한다고 해서 그 언어에 대해 잘 아는 것은 아니다.

어찌보면 한 단어의 정확한 뜻은

국어보다 영어를 더 많이 알고 있을지 모른다.

모국어는 사전적 의미로 익히는 것이 아니라 담화상황이나 문맥적 맥락을 통해 분위기, 느낌으로 익히게 된다.

그래서일까.

번역물들을 보면 한국어를 못 하는 번역자들이 무척이나 많다.

외국어를 공부하는 만큼 한국어를 공부했다면 좋았을 텐데, 그러지 못한 거 같다.


저자가 좀더 한국 사회와 문화, 역사에 대해 공부하고 문학들을 많이 읽었다면

자신이 지적하는 문제의 언어들이 대부분

근대화의 과정에서 나타나기 시작한 사회적 병폐와 상당히 밀접함을 알 수 있었을 텐데 말이다.

영어를 잘 모르는 나도 알고 있는 사회적 문제들이니 말이다.

그렇다면 영어를 통해 바라보는 한국 사회가 아니라

인문학적 시선을 바라보는 한국 사회가 되었겠지만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