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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 바람, 사람

영주 <부석사>

아직 오늘 중 2010. 12. 3. 12:59

소수서원을 나와 아침밥을 먹고 우리는 부석사로 향했다.

 

의상대사를 사랑한 타국의 한 공주가 용이 되어 의상대사를 괴롭히는 이교도들에게 돌을 던졌다는 곳.

그 돌이 다른 돌들 위에 실 하나가 통과할 정도로 떠 있었다는 곳.

지금은 조금 가라앉았다고.

 

 

경내가 너무나 아름다웠다. 아니, 경내에서 바라보는 저 아래 세상이, 그 주변의 산자락들이 무척 고왔다.

 

 

 

무량수전에 들어가 부처님께 삼십원을 드렸다.

절 하나(십원)에 내 어머니의 건강을

절 하나(십원)에 세상 숨탄것들의 안녕을

절 하나(십원)에 세상 사람들의 슬픔과 분노를......

 

그리고 또 하나 전구를 부탁드렸다.

하느님께 성당에 안 나가서 정말 죄송하다고 전해주세요. 미워하시면 안 된다고요. 정말 부탁드립니다.

경내 틈틈이 가득한 늦가을의 정취.

지붕을 받치고 앉아 저 봉황은 무엇을 생각할지. 꼭 아래 연꽃의 향기에 취해있는 것 같기도 하다.

어느 날 저 새가 훌쩍 날아가버리면 저 지붕이 살포시 내려앉겠지?

 

 

우리는 부석사를 나와 다음 일정인 <안동>으로 가기 위해 봉화가는 버스를 타야했다.

봉화가는 버스는 부석사거리에서 타야했는데

걸으면 2,30분이라는 말에 아무 고민없이

차시간까지 넉넉하니까 걷자>를 선택했다.

하지만 그 두배는 걸었지?

안개가 살포시 내려앉아 햇살이 없는 쌀쌀한 거리를 걷는 기분이 나쁘지는 않았다.

소백산자락 자락을 눈여겨보며 길게 늘어선 사과나무를 보며 노래도 흥얼흥얼거리며......

나무 꼭대기에 남은 한 두알의 사과를 보며 까치밥일까 궁금해도 하며.

마침 사과밭에서 나오시는 할머니 한 분께 여쭤보았다.

"손이 안 닿아서 못 땄어."

하시며 웃으시는 고운 얼굴. 그 대답에 우리도 유쾌했다.

 

친구는 내게 물었다.

고급 승용차에 오성급호텔에서 묵는, 편안한 여행은 어떻겠냐고.

 

나는 생각했다. 그리고 이 시골버스의 정경을 보며 내 생각이 더 좋다고 생각했다.

오래오래 건강하면 좋겠다,고 생각했었다. 그 친구의 질문을 듣고.

그래야 천천히 걸으면서 공기 한 자락, 사과나무 한 그루, 그 곳의 아주머니 한 분, 더 만나고 더 듣고 더 가슴으로 담아낼 수 있을테니.

보기에는 옹색하고 초라해보일지 모르지만

엉덩이 반질반질한 몸빼바지가 그들의 옹색하고 초라한 삶만을 이야기한다고 단정하고 싶지 않았다.

차 가진 사람들이 볼 때

시골버스를 타고 돌고돌고, 걸으면서 오금의 고통을 느끼는 나의 여행이 없는 자의 초라한 행색일 수 있겠으나

내게는 그런 불편함과 힘겨움이 여행의 진정한 기쁨을 알게 해주기 때문이다.

내가 늙어, 몸도 느리고 느려져 빨리 달리는 차 안에서 바라보는 풍경을 편안히 즐길 수 있게 되는 그날 전까지는

나는 아마 이런 여행을 계속할 것 같다.

건강하여 그러고 싶다.

청량산 입구에서 찍은 밝은 달은 초점을 잃고 네 개가 되었다.

그렇게 까만밤을 처음 보았다.

밤다운 밤. 사람들에게 안식을 주는 어둠이란 저런 거겠지.

은부스러기 재잘되는 강물 소리도 처음 보았다.

빠르게 지나갔다면 못 보았을 소중한 것들이 가슴에 차곡차곡 내려앉아

가을처럼 나를 좀 더 깊어지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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