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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문 <국가는 폭력이다 - 평화와 비폭력에 관한 성찰>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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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문 <국가는 폭력이다 - 평화와 비폭력에 관한 성찰>

아직 오늘 중 2010. 12. 2. 12:40

다른 식으로 행동하는 사람들은 보통 삶의 형태 그리고 인간의 품성과 인생관이 동시에 개선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이렇게 생각하는 것은 결과를 원인으로, 원인을 결과나 수반하는 조건으로 생각하는 실수를 범하는 것이다.

인간의 품성과 인생관이 변화하면 삶의 형태가 달라지지만, 삶의 형태가 변한다고 해서 인간의 품성이나 인생고나이 달라지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사람들의 관심과 행동을 잘못된 방향으로 이끌어 이같은 변화를 방해한다. 삶의 형태를 변화시킴으로써 인간의 품성과 인생관을 바꾸려는 행위는 난로 안에서 젖은 나무의 위치를 이렇게 저렇게 바꾸어보려는 것이나 다름없다. 알다시피 난로 안의 어디에다 어떻게 놓더라도 젖은 나무에 불이 붙지는 않는다. 마른 장작만이 어디에 어덯게 놓든 상관없이 불이 붙는 법이다.

 

 

어떤 국가에서는 선거로 누군가를 뽑으면 그가 다른 사람들과 함께 얼굴도 본 적이 없는 이런저런 후보를 다시 뽑는다. 물론 어떤 나라에서는 직접 국가 권력의 대표자를 뽑기도 한다. 어쨌든 사람들은 이런 선거 제도로 자신들이 국가 권력의 함여자가 되었다고 생각한다. 그리하여 자신들은 국가에 복종하는 게 아니라 자신들의 뜻에 복종하는 것이며, 따라서 자신들은 자유로운 조재라고 결론을 내린다. 이것은 이론적으로나 실제적으로나 기만이 분명하다. 가장 민주적인 조직과 보통 선거권을 갖춘 국가라고 하더라도, 국민이 자신들의 뜻을 표현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입헌 국가의 국민은 언제나 노예다. 왜냐하면 정부에 참여하거나 참여할 수 있다고 상상하면서 그에게 가해지는 폭력의 정당성을 인정하기 때문이다.

 

 

일반적으로 말해 도시 인구가 되었든 농촌 인구가 되었든 러시아인에게 현재와 같은 결정적인 때에 중요한 것은 무엇보다 다른 이들의 경험이나 다른 이들의 사고, 개념, 말에 따라 사는 것이 아니라, 다양한 사회민주주의 체제, 헌정, 권한, 관료들, 의원들, 입후보자들에 의존해 사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생각하고 스스로의 삶을 살며, 자신의 과거로부터 그리고 자신의 영적인 토대로부터 새로운 삶의 형태를 구축하는 것이다.

 

 

- 레프 톨스토이, <국가는 폭력이다>중에서, 달팽이, 2008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