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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여행은 내 것이었어라! 본문
동유럽 여행은
내가 정말 가고 싶은 여행지 3곳 중 한 곳이었다.
물론 진정한 동유럽이라면 헝가리나 슬로바키아 같은 곳에 갔어야 하고 나 역시 가고 싶었던 곳들은 그런 곳들이었다.
하지만 재작년 가을부터 나는 프라하에 갈까, 라는 생각을 했었고
이런 저런 이유들로 여행은 차츰 미루어졌었다.
사실 이번 장거리 여행도 원래는 1,2월쯤 터키로 갈 예정이었다.
동행인의 사정과 내 사정으로 무산되었던 그 여행이
이 초봄의 짧은 동유럽 여행이 되었던 거다.
여행을 준비하며 주변 사람들에게 가장 많이 듣는 말은
거기 왜 가?
였다.
사회에 나가 첫 휴가지로 갔던 보길도에 갈 때에도
- 거기 볼 것도 없던데 왜 가요?
재작년 11월에 프라하로 여행을 갈까, 했을 때도
- 추운데 뭐하러 가?
였다.
이번 여행도 마찬가지였다.
이런저런 블로그나 카페에서 보면
3월은 프라하나 비엔나를 여행하기 좋은 시기는 아니었다.
동행인 역시 그런 말을 들었단다.
- 3월에 체스키에 갈 거면 아예 가지를 마...
그들 말대로 비엔나와 프라하의 초봄은 우리에게 절대(!) 친절하지 않았다.
공항에 도착하는 그 순간부터 우리는 추위에 떨어야했다.
그리고 여행운도 좋지 않았다.
숙소를 찾는 것 이외에는 쉽게 어딘가를 찾지 못했다.
도로명을 따른 주소지들이 확실히 길찾기에는 쉬었으나 유명 관광지들은 주소지가 명확하게 나온 경우가 거의 없었던데다
그 전의 여행들만 생각하며 주소지를 챙겨가지 않은 것이 가장 큰 화근이기는 했다.
또, 마법 날짜와 여행 일정이 겹쳐 육체적인 피로감을 감당하기 어렵기도 했고
동행인과 마음이 어긋나 있는 시간들도 꽤 되었던 것 같다.
우리 역시 그런 대화를 나누었었다.
우리가 왜 여기로 온 걸까??
나에게도 꼭 비엔나와 프라하로 갈 이유가 없었고 - 정말 가고 싶었던 곳은 헝가리와 슬로바키아쪽이었으니까
동행인 역시 스페인이어도 좋았을 거라는데....
사실 터키에 5일 머무르며 여행을 하는 게 내게는 가장 좋은 여행지였지만
동행인에게는 매력적인 선택이 아니었다.
함께 여행하는 5일 정도의 시간동안 짧게 이동하며 볼 수 있는 곳....
프라하와 비엔나는 그렇게 정해졌었다.
하지만 생각해보면 로마에 있다가 비엔나로 오는 동행인의 코스를 생각했다면
내가 가보지 못한 피렌체나 체퀜테레를 다니며 이탈리아에서 5일을 있을 수도 있었고
스페인에 가서 따뜻한 봄을 지내며 5일 보내는 것도 나쁘지 않은 방법이었을 거다.
준비 기간이 없었던 것도 아니었는데 우리는 왜 그런 생각을 하지 못했던 걸까....
아쉬웠다.
남들은 모두 즐거운 여행의 기억으로 비엔나를 올렸던데 나는 왜 비엔나가 그렇게 싫지?
다른 사람이 올린 체스키는 알록달록 예쁘고, 4월부터 개방한다는 그 정원 역시 너무 아름답던데
나는 왜 그걸 볼 수도 없는 그 때에 거길 갔을까...
안타까웠다.
그리고 돌아오는 길에 정말 아쉬웠다.
여행은 - 좀 거창하게 말하자면 - 인생과도 같다.
여행이 즐겁기만 하고 힘든 일도 없을 거라고 누가 그러던가!!
여행을 하다 가방 채 도둑을 맞았다는 사람도 있고
여행을 하다 교통 사고가 나서 병원에 입원하게 되는 사람도 있을 거다.
나 역시 이번 여행에서 최악의 컨디션이었고 배탈로 아프기도 했다.
그게 이번에 한 나의 여행이었다.
남들이 좋았다고 내게도 좋을 리 없고
남들이 여름이나 가을을 보았다고 해서
그곳의 봄이나 겨울이 무의미하다고 할 수 있을까.
왜 그 시기에 그곳으로 갔냐고?
그 때밖에 시간이 안 났던 거고, 그 장소 외에는 생각을 못 했기 때문이다.
책임을 추궁하는 것이 아니라
살면서 때로는 "그냥"만한 정답이 없을 때가 있는 것처럼
때로 여행은 그런 것이다.
왜 그 때 거기에 갔냐고?
그냥!
그게 나의 여행이었다.
힘들었고, 피곤했고, 짜증이 나서 외부의 사물들에 내가 제대로 감응하고 있는지조차 알 수 없었던
이게 나의 여행인 것이다.
그리고 이 여행의 깨달음을 좀 더 빨리 깨달았다면
남들의 여행과 비교하며 내 여행을 즐기지 못하는 상황은 피할 수 있었을 텐데 말이다.
이 여행에서 가장 아쉬웠던 건 그거였다.
남들의 여행과
과거의 여행과 끊임없이 비교하고 재가며
지금 현재의 내 여행을 구겨버린 부분이 많다는 것.
모든 것이 그런 것 같다.
<지금의 나>를 잃는 순간,
그 순간이 내 삶에서 가장 위험한 때라는 것!
2013년 3월, 나의 장거리 여행은 이렇게 끝났다.
비행기에서 바라보는 저녁놀도
저 아래 보여지는 수많은 도시들의 불빛도 내 장거리 비행을 배웅해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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