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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청원>

아직 오늘 중 2012. 3. 22. 14:53

영화가 시작하면 이국적인 선율과 함께

옛스러운 느낌이 나는 저택 안을

그 공간에 어울리도록 긴 치마를 입은 여인이 걸어간다.

리듬을 타듯 흔들리는 치마자락을 따라 가면

그곳에는 치마자락만큼도 생동감이 없는 남자가 누웠있다.

그 남자의 <청원>이 이 영화의 주된 내용이었다.

 

 

 

친구로 인한 한 순간의 사고로 14년 동안을 전신마비로 살아가는 마술가, 이튼.

신장이 기능을 멈추었고, 이제 폐의 기능이 소실되어 가는 시점에서

그가 원하는 단 한가지는 자살 - 안락사였다.

그는 전신마비 상태에서도 라디오를 진행하며 많은 사람들에게 희망과 긍정의 에너지를 전달해주는 유머러스한 사람이었고

제자의 실수로 자신이 위험한 상태에 있었음에도

너무나 놀란 간호사 소피아를 웃게 만드는 긍정적인 사람이었다.

그런 그가 자신의 마지막 소원인 인간다운 죽음을 허가해달라고 법원에 청원을 낸다.

그걸 옆에서 적극적으로 돕는 사람은 가장 친한 친구인 변호사.

그의 선택을 처음으로 손들어준 사람은

그의 모든 것을 사랑하고 이해했기에 그와의 이별도, 그가 권하는 결혼도 받아들인 그의 지난 사랑.

그리고 그를 항상 지지해주는 그의 어머니....

 

 

 

희망은 나눌 수 있어도 고통은 나눌 수 없는 것일까.

얼굴에 앉은 파리 하나 날리지 못하고

이마로 빗방울이 떨어져도 자리하나 피하지 못하며

담배도 피우지 못하고, 물 한모금 마시는 자유도 없이

대소변 배설의 쾌감 같은 갓난아이도 누리를 즐거움마저 빼앗긴 한 남자.

 

그 남자는 정말 계속 살았어야 하는 걸까.

그의 죽음에 대한 선택은 정말 신을 화나게 할만큼 오만하고 불경한 것일까.

 

그는 잘 생겼고, 유머 있으며, 늘 긍정적인 사람인데

그가 자살을 생각하다니 뭔가 역설적이지 않은가.

 

 

 

그가 어머니의 장례식장에서 부르는 "What a wonderful world"는 담담하면서도 뭔가 구슬펐다.

크리스마스에 자식과 함께 할 저녁이 없어 술집에서 노래를 부르던 그의 어머니와

어머니의 장례식이지만 어머니의 관에 흙 한줌 넣을 수 없는 그가

부르는 그 노래는 삶의 이중적인 면을 잘 보여주는 것 같았다.

 

그의 슬프고 좌절스러운 마음을 잘 아는 소피아.

그녀가 레스토랑에서 이튼을 웃게 하기 위해 춤을 출 때,

정말 매력적이었다.

 

 

그녀가 자신의 아내가 되었고

이튼의 고통을 덜어주는 것 이외에는 아무 욕심이 없는 소피아를 두고도

결국 그는 죽음을 선택한다.

 

그가 영화 말미에 묻는다.

그렇게 행복한데 왜 죽으려 하느냐.......

 

누구에게나 겨울은 강철로 된 무지개가 되는 것은 아닌 법이니까......

 

 

인생은 짧습니다. 여러분 용서는 빨리, 사랑은 진실되게........

 

그 짧은 인생의 마지막 여정인 죽음마저 행복하게 받아들일 수 있다면

그보다 더 아름답고 인간다운 죽음이 어디있으랴....

 

하지만 나는 이 영화가 죽음을 통해 삶을 이야기하고 있다고 생각했다.

 

종교가 지배하는 인도라는 나라에서

많은 사람들의 관심을 받고 있는 공인으로서의 이튼.

죽음마저 국민투표에 붙여 사람들로부터 자신이 왜 죽음을 선택해야하는지 이해를 받아야하는 상황에 대해서

 

이튼의 어머니가 법정에서 남긴 말은 가슴에 오래오래 남았다.

 

이튼의 죽음은 누구의 것이겠습니까?

맞습니다. 내가 그를 낳았습니다.

그렇다고 그의 삶이 저의 것입니까?

맞습니다. 판사님은 그의 죽음을 거부할 힘을 가지고 계십니까?

그래서 그의 삶이 판사님의 것입니까?

이튼의 삶은

여러분의 것도, 저의 것도 아닙니다.

이튼의 삶은 이튼의 것이며 죽음도 그의 것입니다.

그러므로 저는 이튼의 선택을 도울 것입니다.

 

 

 

이튼은 긍정적이고 행복한 사람이었다.

그를 사랑하는 많은 사람들이 있고, 그에게 힘을 얻은 더 많은 사람들이 있다.

행복하기 위해 그는 자신의 고통보다 더 많이 웃었고

고통받는 몸보다 더 많은 에너지를 정신에 쏟아부었을 거다.

그러기에 그는 죽음을 당당하게 선택할 권리가 있는 거라고

생각했다.

그는 이튼으로서, 자신의 삶을 충실하게 열심히 살았으므로

이튼으로서 죽음 선택할 권리가 있는 거라고.

 

삶과 죽음은 결국 모두 인생 안에 있는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아름답고 담백하고 흥겨워서 더 인상적이었던 영화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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