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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원더보이> 본문
아빠가 살았던 42년은 너무나 짧은 시간이죠.
별들의 숫자에 비하면 그건 없는 것이나 마찬가지예요.
하지만 상상해보세요.
그 빛들을 나눠서 쪼일 수 있었다면 아빠는 평생 매초당 7조5499억 5047만 2325개의 별빛을 받으면서 살았던 거예요.
그렇게 대단한 1초라는 걸 알았더라면 아빠는 울지도 않았을 텐데요.
소주를 마시지도 않았을 거고, 약병을 들고 죽겠다고 아들에게 소리치지도 않았을 테죠.
아빠 인생의 1초가 그렇게 많은 빛으로 가득했다는 걸 알았더라면 말이죠.
"군은 인간에 대해 아직 더 많은 것들을 배워야만 한다. 우리는 언제 가장 강해지는가? 적의 가장 약한 부분을 타격할 때다.
그럼 가장 약한 부분은 어디인가? 에착하는 것들이다.
사랑 따위, 간절함이나 소망 같은 것들, 성경에 나오는 것과 같이 믿는 것과 소망하는 것과 사랑하는 것 들을 빼앗으면 인간은 한없이 약해진다. 그 중에서도 사랑하는 것을 빼앗으면 인간으로서의 삶은 그 순간 끝난다......."
" ...... 이해란 누군가를 대신해서 그들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 그리고 그 이야기를 통해서 다시 그들을 사랑하는 일이야. ......"
현재 우주의 나이는 137억 살로 알려져 있습니다.
137억 광년보다 더 떨어진 별들의 빛을 보기에 137억 살이란 나이는 너무나 젊습니다.
게다가 지금도 우리의 우주는 성장하고 있습니다.
팽창하는 풍선 위의 점들과 마찬가지로 별들은 점점 멀어지고 있습니다.
멀어지는 별들은 희미해집니다.
우리의 밤은 아직 보이지 않는 빛과 멀어지면서 희미해지는 빛으로 가득 차 있기 때문에 어두운 것입니다.
그러므로 결론은 다음과 같습니다.
우리의 밤이 어두운 까닭은 우리의 우주가 아직은 젊고 여전히 성장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 김연수, 소설 <원더보이> 중에서, 문학동네, 2012년-
여전히 아름다운 문장으로, 여전히 역사와 세계에 대한 시선을 유지한 채
전보다 조금은 발랄해진 - 그래서일까, 웃긴 부분에서 김애란이 떠올랐던 건- 주인공을 내세우고
여전히 예쁜 띠지를 두른 표지의 책으로 나온
김연수의 신간 소설 <원더보이>
"네가 누구든 얼마나 외롭든"을 읽은 후부터 나는 그의 소설들을 좋아했지만
이 소설 역시 내게는 '역시 김연수구나' 하는 생각이 들게 했다.
개인사적인 이야기와 역사적인 부분이 교차하는 방식은 "네가 누구든....."때부터였으니 여전했으나
읽으면서 느꼈던, 개인적인 이야기와 역사적인 내용들이 물과 기름처럼 겉돈다던 느낌은
<원더보이>에서 많이 밀착되어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결말 부분이 좀 미지근하지만
뭐.... 성장소설이잖아?
애가 아직 열일곱에서 끝났으니까
소설 밖에서 미진한 부분은 계속 커나갈 애와 함께 해결해나가려나?
그런거 안 보여주면 소설의 완성도가 떨어지는 거 아니냐
뭐 이런 생각도 안 드는 건 아니지만
그건 좀 더 고민해봐야할 문제인 거 같고.....
어쨌거나 발랄하면서도 무겁고, 그러면서도 우울해지지 않는 소설을 읽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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