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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내 사랑>

아직 오늘 중 2021. 5. 20. 11:17

 

 

 

캐나다의 화가 모드의 실화를 바탕으로 한 영화 <내 사랑> 역시 개봉 당시 상영관이 많지 않았고, 상당히 바빴을 때라 놓쳤던 영화 중 하나였다. 그런데 원제목은 '모드'였던 모양이다.

 

영화는 불편한 한쪽 팔을 잡고 천천히 붓질을 하는 장면에서 시작된다.

그리고 모드의 오빠가 숙모와 만나 모드의 거취에 대해 갈등하는 장면이 나온다.

모드의 오빠는 유산으로 남은 집을 모드와 논의 없이 팔아버렸고, 혼자 사는 숙모에게 모드를 맡기고 약간의 생활비를 지급하는 것으로, 모드를 떼어놓는다.

모드를 이해할 수도, 인정할 수도 없는 숙모는 그녀를 쓸모없는 인간, 문제만 만드는 인간 취급을 한다. 이유는 그녀가 관절염으로 몸이 정상적이지 않다는 것. 

모드가 잡화점에서 가정부를 구한다는 에버렛을 보고 그의 집을 갔던 것은, 독립을 원했기 때문일 거라고 생각했다.

에버렛은 가난해보였고, 다혈질에 자기 생각을 표현하는 적절한 낱말을 잘 찾지도 못하고 무례해보였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영화를 볼수록, 모드는 첫눈에 알았던 게 아닐까, 싶었다.

그가 자신의 생각을 잘 표현할 수 없는 사람이지만 표현되지 않는 그 속마음은 따뜻하고 누군가를 배려할 줄 아는 사람일 거라는 것을.

처음에 에버렛은 모드에게 정말 무례했다.

에버렛이 혼자 살고 있던 집. 정말 작고 초라하고 지저분해 보인다. 그리고 어딘가 쓸쓸해보인다.

물론 가정부로 들어간 첫날부터 모드는 지나칠 정도로 안일하기는 했다. 에버렛이 아무 지시도 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간단하게 빗질을 하는 걸로 청소를 끝내고, 순무로 스프를 끓여놓는 것으로 집안 일을 끝내고 이제 처음 본 에버렛의 물건들을 마음대로 들여다보며 소일하고 있었다. 그런 이유로 에버렛은 불같이 화를 내며 모드를 집에서 쫓아냈다. 모드에 대한 불신은 모드의 가족들과 다를 바 없었다. 숙모에게 큰소리를 치고 나온 만큼 돌아갈 곳이 없는 모드는 밖에서 밤을 샜다. 

그리고 에버렛은 쉽게 마음을 열지도, 모드를 인정해주지도 않았다. 집안 서열을 자기-개-닭-모드라고 말을 하는 잔인함도, 방문객 앞에서 자기 말을 듣지 않는 모드의 뺨을 치는 폭력성도 가지고 있지만 자신의 그림을 팔고 싶어하지 않는 모드의 표정을 보고 거래를 취소하는 배려심도 가지고 있는 사람이다.

모드가 에버렛의 마음을 그만큼 열리기까지 버틸 수 있었던 것은 그 내면의 진짜 모습을 일찍이 봤기 때문이 아니었을까, 싶다. 

에버렛의 집에 그림을 그리기 시작하는 모드. 에버렛은 약간의 불평을 하지만 그림을 그리지 말아야할 곳을 지정해주는 것으로, 모드의 그림을 받아들인다.

 

이 집에서 둘은 부부가 되었고, 그림을 팔며 살아간다.

 

우연한 기회로 팔리기 시작한 모드의 그림은 결국 유명세를 타고,

거기에 불편함을 느낀 에버렛과 갈등이 있기도 하지만

이미 에버렛은 그림에 열중하는 모드를 위해 집안 일을 하고, 경제활동을 멈추지 않고 있었다.

 

이 에버렛을 연기하는 에던 호크에 정말 깜짝 놀랐는데,

그가 나오는 모든 작품을 다 보지는 않았지만

내가 지금까지 봤던 에던 호크는 대부분 지적이거나 내적 고뇌가 가득한 햄릿형의 인물을 연기했었다.

그런 그가 생선장사에 잡역부로 생계를 이어가는, 완고하고 거칠어보이는 에버렛을 표정으로 온전하게 보여주는 것은 내게 무척이나 신선했다.

모드와 생활하며 어느 정도 부드러워진 에버렛의 표정

 

제대로 표현하지 못하는 에버렛의 미안함과 그간 느꼈을 소외감까지 알고 있는 듯한 모드의 손길. 그리고 정말 모드가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잘 알고 있는 에버렛

 

"나는 충분히 사랑받았어요."

모드에게 모질었던 시간들에 후회하고, 충분히 표현하지 못했던 것에 안타까워 하는 에버렛에게 모드는 이렇게 마지막 인사를 건넨다.

모드로 인해 에버렛이 세상과 좀더 편안해지고 소통하게 되지는 않았다. 다른 사람들에게 그는 여전히 괴팍하고 불쾌한 사람이다.

하지만 모드와 함께 했던 그 공간에서 그는 모드를 받아들여준 유일한 사람이었으며, 모드가 원하는 것과 원하지 않는 것이 무언지 알아준 사람이었다. 

사랑이 누군가를 성장시키고, 변화시킬 수 없을지 모르지만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형태로만 표현되는 것이 아닐 수도 있지만

누군가에게 따뜻한 온기, 잘 가꾸어진 집같은 마음을 갖게 해주는 것은 아닐까.

잔잔하면서 아기자기 예쁜 영화가 모드의 그림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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