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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 <빨래하는 페미니즘>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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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 <빨래하는 페미니즘>

아직 오늘 중 2018. 7. 10. 16:35



      나는 길리건의 연구 내용을 읽다가 문득 깨달음을 하나 얻었다. 내가 얼마나 자주 스스로의 욕구를 '이기적'이라고 치부해 버렸지? 이 깨달음은 충격적이었다. 나를 비롯한 여자들은 스스로의 욕구를 따르려 할 때마다 얼마나 자신을 이기적이라 탓하지만 남자들은 그런 일이 드물었다. 나는 남편이나 주위의 남자 친구들이 일을 너무 늦게까지 하거나 친구들과 밤새 어울려 놀더라도 겸연쩍어하거나 죄책감을 느낄지언정 자신이 '이기적'이라 말하는 걸 들어 본 적이 없었다. 개인의 역구를 추구하는 행위에 이기적이라는 딱지를 붙이는 것은 해로운 결과를 낳는다. 자신을 희생시켜 가면서까지 타인을 배려하는 여자는 그토록 지키고 싶어하던 소중한 관계들을 파괴하는 결과를 초래하곤 한다. 그녀가 가면을 쓴 채 살아가기 때문이다. 마찬가지로 사사건건 정의의 사도 노릇을 자처하는 남자들 또한 거짓된 삶을 살아간다고 할 수 있다. 바람직한 태도는 '정의 윤리'와 '관계 윤리'를 적절히 통합해 직장과 가정에서 더 의미있는 인간관계를 맺으며 살아가는 것이다. 이를 디즈니식으로 표현하면 남자들은 왕자님과, 여자들은 멀레피센트와 더 소통할 필요가 있다.



      모니크 위티그 - '여성성의 신화'에서 탈출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모든 여자가 '이진법'에서 탈출해 성적인 면에서 뿐만 아니라 모든 면에서 레즈비언이 되는 것-의 주장은 생각해볼 만한 또 다른 화두를 우리에게 던져준다. 바로 여자들의 희생이 전부 억압에 의해 탄생한 것은 아니라는 사실이다. 여자들은 때로 억압 때문이 아니라 사랑, 책임, 공도체 의식에서 우러난 행동을 한다. 그것은 남자들도 마찬가지이다. - 중략-

 사랑, 배우자와 자녀를 향한 여자들의 사랑을 강력히 지지하며 , 누구도 사랑을 표현하고 칭송할 기회를 박탈당해서는 안 된다고 믿는다. 하지만 급진적 여성 동성애자들의 정치적 발언은 내게 어떤 감흥도 불러일으키지 않았다. 페미니즘의 의도가 여자들의 경험이라는 옷감을 짜는 것이라면, 인생의 가장 다채로운 실이랄 수 있는 사랑과 낭만과 육아의 기쁨을 어찌 무시할 수 있단 말인가?

 



     페미니즘은 평등을 상징한다. 페미니즘은 여자들에게 목소리와 선택권을 주었다. 캠퍼스에서 벌어지는 성폭력에 대한 교육은 각자의 욕구에 대한 솔직한 대화의 중요성을 여자와 남자 모두에게 알리는 데 목적이 있다.  페미니즘의 실패를 청춘, 대학 문화, 인간 본성의 모순 탓으로 돌리는 것은 사실 잘못된 방향이다. 로이프는 사교 클럽 파티에서 반쯤 몸을 드러낸 채 춤을 추면서 나와서는 '밤길 되찾기 시위'에 참가해 목이 쉬어라 구호를 외치는 자기 세대 여자들에 대해 다음처럼 적었다. "욕구, 불안, 페미니즘, 야망이 충돌해 이 기이하고 새로운 잡종이 탄생했다. 잡지 모델처럼 세련된 외모에 사상은 급진적인 페미니스트들." 그러나 페미니즘이 제공한 혜택을 실컷 누리면서 페미니즘이 자신들에게 너무 많은 선택권을 주었다고 투덜대는 여자들 또한 로이프가 말한 여자들과 다를 바 없는 '잡종'이 아닐까.




     리버밴드 - 이라크에서 '걸 블로그' <바그다드 버닝>을 운영하는 블로거. "그녀는 이라크에 대해 알려주며 텔레비전에 나오는 정치인들을 혹독하게 비판하기도 했다. 이라크의 새 정권하에서 여자들이 얼마나 억압받고 있는지 상세히 묘사함으로써 정치인들의 말과 자신의 현실이 어떻게 다른지를 보여 준다. 리버밴드는 운전을 하고, 남자들과 동일한 임금을 받고, 입고 싶은 옷을 입고, 저마다의 가치와 신념에 따라 이슬람교 교리를 실천할 수 있었던 시절을 절절히 그리워했다." -는 자신을 페미니스트라 칭하지 않았지만 우리는 그녀의 글을 페미니스의 관점으로 읽었다. 그녀의 글은 궁즉적으로 페미니스트의 이야기라고 할 수 있을까? 아니면 그저 한 여성의 개인적 이야기일 뿐일까? 누군가의 이야기에 '페미니스트'라는 딱지를 붙여도 되는 것일까? 만약 그래도 된다면 특정 이론, 철학, 운동을 전개하기 위해 사람들의 이야기를 그러모으는 목적은 무엇일까? - 중략 -

  2년 전 나는 아내와 여성이라는 새로운 역할과 타협하는 와중에 나 자신을 잃어버리지 않을까 두려워하며 그 두 정체성을 조화시킬 방법을 찾기 위해 서점으로 들어갔다.  -생략- 내 정체성의 일부는 내가 스스로 창조했지만 또 다른 일부는 끊임없이 퍼붓는 문화적 이미지에서 자유롭지 못했다. 나는 제약받고 있었다.



    
     "정체성은 지식의 주체가 되는 경험에서 나옵니다. 이 점을 잊지 마십시오. 존재란 과정, 이야기, 대화입니다. 항상 누구도 예상치 못한 이야기를 들려 주기 위해 노력하세요."

  역사는 각 세대에게 고유한 무늬의 입맞춤과 타박상의 흔적을 남기지만 여자들이 겪는 근본적인 문제는 세대를 막론하고 동일하다. 시간과 공간과 환경의 차이에도 불구하고 모든 여자는 자기 정체성의 경계를 타협해야 한다.  이런 점에서 우리 모두에게는 공통 분모가 있다.



- 도서 <빨래하는 페미니즘>, 스테퍼니 스탈, 민음사, 2016년-



주디스 버틀러 : 억압적인 것은 '남자'가 아니며 페미니즘의 '이분법적 사고 방식'

                       세상이 오로지 남자와 여자로만 구성되어 있다는 구조화된 시각은 성별에 따라 틀에 박힌 신체적 행동을 모방하도록 만들어 성차별을 강화한다. 페미니스트들이 불변의 생물학적 특징으로 여긴 성 또한 사회적으로 구조화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