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락방
영화 <은교> 본문
어떤 기대감 같은 게 있었다.
그리고 막상 보려니 보고 나면 우울해질 것 같아 조금 저어하는 마음도 생겼다.
하지만 보고 나니 그렇게 우울하지 않았다.
기대감에 포만스럽지도 부족하지도 않을만큼 딱 그만큼의 영화였다.
스포일러처럼
벗었다>를 마케팅으로 내세운 것에 반기라도 들듯
여기저기서 <야한 영화 아니다> <젊음에 대한, 가질 수 없는 것에 대한 집착과 미련>을 그린 영화다
말들이 많았다.
주제를 알고 듣는 국어수업같은 기분도 들었다.
그래도 직접 보니 은교의 대사처럼
"아무리 다 전해들었다 해도 그 때 그날의 분위기가 있잖아요.
그걸 어떻게 똑같이 전할 수가 있겠어요."
영화 역시 기사로는 전달되지 않는 것들이 있었다.
1. 가벼움
영화는 마냥 진지하지 않았다.
열일곱의 소녀 은교처럼
그 나이의 아이들이 지니는 가볍고 유쾌한 측면들을 가지고 있었다.
그런 가벼움이 은교를 향한 노 교수의 내밀한 욕망을 덜어내주고 있는 듯 했다.
열일곱이기에 알건 알지만 그래도 모를 건 모르는 나이,
영화는 그렇게 알건 알고 모를 건 모르는 소녀처럼
이내 진지해질 장면에서도 가벼운 음악을,
좌절과 분노와 질투가 치밀어오르는 감정신에서도
낭만적인 조명과 음악이 배제된 고요함을 적절히 배합하고 있었다.
열일곱 아이처럼 영화는 팔랑거리며 때로는 우울하고 때로는 내밀한 무게가 있었다.
2. 관계
영화에선 삭제된 장면이었던 듯 한데
나는 이 둘의 베드신보다 저 사진 한 장이 오히려 저들의 감정선을 더 많이 보여준다는 느낌을 받았다.
(블로그에 감상평만 써놓기에 밋밋하다는 생각에 찾다가 발견한 거지만....)
아무리 따라가려 발버둥을 쳐도
이 세상 모든 거울이 다 똑같은 거울인 서지우에게
천재적 시인 이적요는 존경의 대상이며 갈망의 대상이었다.
그의 수제자로 함께 생활하며 그의 모든 뒤치닥거리를 다하면서
서지우는 이적요에게 가장 가깝고 필요한 사람은 자신이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화목하지 않은 가정과 엄마의 손찌검, 그리고 십대 특유의 외로움
그것들을 할아버지로부터 위로받고 있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어쩌면 은교는 내색하지 않았을 뿐 자신을 향한 이적요의 이성적 애정을 느끼고 있었을지도......
하지만 어느 순간 자신과의 관계는 차단되고
자신과 둘만의 일이라고 생각했던 것들이 서지우와 공유되고 있다고 생각했을 때
은교는 불안하고 외로웠을 것이다.
한 순간 이적요로부터 분리된 그들이 외로워서 육체를 나누게 되는 일은 당연할지도 모르겠다.
서로에게 깃들어 있는 이적요를 나누듯......
결국 서지우는 이적요에게 아무 것도 받은 것이 없다고 생각하고
스승으로서 존경하고 아버지처럼 따르던 자신을 배신한 건 이적요라고 분노했지만
이적요에게서는 마지막 젊음을 앗아가고 도둑질해 간 건 서지우였다.
자신의 글을 읽었다면 은교가 자신에게 어떤 의미인지 알았을 서지우였는데 그가 은교에게 손을 대다니.......
당신의 아들도 못한 일들을 해온 나인데 그가 나에게 어떻게 그런 짓을......
관계의 아이러니와 자기중심적 사고와 애증, 그리고 엇갈림이 극단적으로 보여졌다.
3. 나이들어 간다는 것
젊은 배우가 노년의 연기를 하는 것이
나는 무척 부자연스럽게 느껴졌었다.
아무리 연기를 잘 하는 배우라 하더라도, 언론에서 극찬을 한다고 하더라도
나는 노년의 연기는 노배우가 하는 것이 가장 자연스럽다고 생각했는데
그 이유는 바로 눈동자 때문이었다.
어떤 특수분장으로도 젊은 생기가 남은 눈동자는 노년의 얼굴과 맞지 않았다.
그러나 이 영화에서만큼은 자연스럽다고 생각이 들었는데
노인의 얼굴을 한 박해일의 눈동자에서
젊음에 대한 열망과 갈망이 잘 읽혔기 때문이 아니었을까 싶었다.
자신의 나체를 실망스러운 얼굴로 물끄러미 바라보는 이적요의 모습보다는
아직 생기가 남은 그 눈동자가 노신에 깃든 젊음에 대한 열정을 더 설득력있게 보여주었다.
도둑맞은 자신의 소설이 상을 받는 자리에서
수상소감같은 축사를 말하는 이적요의 대사는 무척 마음에 와 닿았다.
그대가 노력한 상으로 젊음을 얻지 않았듯
나도 내가 무언가를 잘못한 벌로 늙음을 얻지 않았네.
나이에 따라 사회적 지위가 올라가고 명예를 얻는다는 것은 좋은 일이겠으나
늙어가며 스스로 느끼게 되는 생명력의 위축과
나이와 주위의 시선으로 인해 더더욱 좁혀지는 운신의 폭이 갑갑하고 답답한 일일 듯 했다.
은교가 그려준 헤나그림처럼
이적요는 젊음이라는 날개를 달고 한 번 더 자유로워지고 싶었던 건 아니었을까.
그런 소망을 단순무식한 말로 꺾어버리는 서지우가 미웠던 건 나뿐이었을까.
나름 괜찮은 영화를
좋은 사람과
달디단 딸기를 먹으며 보아서
무척 좋았다.
'보다, 듣다, 읽다' 카테고리의 다른 글
| [스크랩] 5명이 죽었는데… (0) | 2012.05.25 |
|---|---|
| 소설 <죽은 왕녀를 위한 파반느> (0) | 2012.05.22 |
| 산문 <타인의 고통> (0) | 2012.04.27 |
| 소설 <2012 제 36회 이상문학상 전집> (0) | 2012.04.27 |
| 시 <내 인생에 가을이 오면> (0) | 2012.03.26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