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좀머 씨 이야기>
굉장히 오랜만에 다시 읽은 <좀머 씨 이야기>
"제발 나를 좀 내버려 두시오!"
나를 둘러싼 모든 것들이 부담스럽고, 버겁고, 벗어나고 싶은 것들 뿐이라고 생각했던 시절.
좀머 씨가 외치는 저 한 마디는 내게 잠시나마 숨쉴 틈을 주었었다.
그는 죽음으로부터 도망치고, 나는 내 상황들로부터 도망치고......
이제는 내가 할 수 없는 일들과 할 수 있는 일들을 구분할 수 있고,
할 수 없는 일들에 대해서는 힘을 빼는 요령이 생겨서일까.
다시 읽은 좀머 씨는 새롭게 다가왔다.
이 소설에서 '좀머 씨'라는 인물을 덜어내고
한편의 성장 소설 혹은 동화가 되기에 충분하다.
'나'는 작은 시골 마을에 사는, 바람을 타고 하늘을 나는 시도를 하기도 하고
좋아하는 여학생도 있고, 마을 주변의 숲길을 돌아다니며 가족이나 학교에 적당한 불만을 품고 있는 소년이다.
그 소년의 사소하고 인상적인 사건들이 중심이고
그 사건들이 사이로 나타나는 좀머 씨는 '신 스틸러'라고 할 수 있는 단역이다.
하지만 제목은 '좀머 씨 이야기'......
처음에 읽었을 때 미처 생각하지 못했던 '나'의 이야기가 눈에 들어왔다.
좀머 씨가 죽음으로부터 도망치는 동안
'나'는 쉬지않고 삶을 살아가고 성장한다.
때로는 심리적 충격에 '죽음'을 떠올리기도 하지만
'나'에 죽음은 낭만적(?) 충동으로 삶을 살아가는 한 과정에서 만나게 되는 생(生)의 부분이다.
좀머 씨가 언제부터 그렇게 살았는지 알 수는 없다.
좀머 씨에게 아내가 있다는 것, 전쟁 후라는 표현이 나온다는 것에서 유추해 보면
필사적으로 죽음으로부터 도망치는 좀머 씨의 병증은 아마도 전쟁 후유증이 아닐까 싶다.
어쩌면 전쟁 전의 좀머 씨는 '나'같은 성장기를 겪은 평범한 사람이었을지 모른다.
하지만 죽음을 피해 다니는 동안 좀머 씨의 삶은 존재하지 않았다.
죽음이란 모든 생명들에게 찾아오는 삶의 일부분이다.
병적으로 이 죽음에 집착하면 살아있는 시간을 죽음으로 채우는 것일 뿐이다.
결국 자기 스스로 죽음을 향해 걸음을 내딛는 좀머 씨를 바라보며 '나'는 그를 말리지도, 신고도 하지 못했던 것은
자신을 제발 내버려두라던 좀머 씨의 말대로 그를 존중했던 것이라는 말의 의미에 대해서도 좀더 이해할 수 있었다.
그의 말을 존중하는 것이기도 했고,
죽음을 향해 나아가는 그의 의지, 죽음을 피해 도망다니던 좀머 씨가 그 죽음과 맞닥뜨리고자 결심을 하게 된,
그의 의지를 존중했을 것이다.
생활을 감당해 주던 아내의 죽음 후 혼자 남겨진 좀머 씨의 생활은 어떠했을까.
예전에 읽었던 책을 다시 읽는 즐거움에는
예전과는 달라지 나의 감상을 비교하는 것도 있을 것이다.
그런 면에서 오랜만에 다시 읽은 <좀머 씨의 이야기>...
정말 재미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