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르구나, 삼척 - 신흥사
계획에는 없었으나 삼척 관광안내 지도에서 찾은 곳.
영화 <봄날은 간다> 촬영지라는 말에 갔는데
우리가 생각했던 대나무 밭은 다른 곳에 있는데다
그곳은 사유지여서 그 곳 주인의 허락이 있어야 들어갈 수 있다는
어떤 블로거의 친절한 글에 우리는 신흥사를 둘러보는 것으로 만족하기로 했다.
삼척의 장호항이 시각적으로 푸른 곳이라면
둘러보는데에는 십여 분이 걸리지 않을 것 같은 신흥사는
청각적으로 푸른 곳이었다.
자그마한 절은 무척이나 고요했는데
기와 시주를 받는 보살님들도 보이지 않고
예불 시간이 지났는지 스님들도 보이지 않았다.
오가며 절을 가꾸고 손보는 스님 한 분만 분주히 조용하게 움직이셨는데
그 조용함이 무척이나 편안했다.
예쁜 꽃들을 만나며 천천히 절을 둘러보는데
범종이 울렸다.
덩~~~
그 소리를 따라 바람이 불며
나무들이 솨~~~~ 대답하듯 소리를 내자
대웅전과 삼신각 처마 끝에 달리 풍경들이
달랑달랑
청아한 소리를 냈다.
한번 더 울리는 범종을 따라
다시 또 풍경이 울리고
그 풍경의 끝에 뻐꾸기가 울었다.
잘 있어, 잘 있어
숲 속의 안부라도 전하는 듯 울던 뻐꾸기는
범종의 소리가 멈추기 얼마 전 사라졌다.
범종의 소리가 절을 빠져나가자
바람 역시 멈추며
잡고 있던 내 발걸음을 슬며시 풀어주었다.
그 푸른 소리들이 너무도 좋아
그늘에 슬그머니 앉아 있자
범종을 치고
삼식각 재단에 올렸을 물을 버리시던 스님이
커피를 한잔 주시겠다며
우리를 공양간으로 이끄셨다.
진하면 물을 조금 더 넣으라는 말씀만 주시고는
우리가 편하게 마실 수 있도록 나가버리시는,
조용한 사찰에 어울리는 스님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고요함마저 푸르고 푸르던
작은 절, 신흥사.
찾은 이의 마음을 깨끗하게 고요함으로 씻어주었으니
정말 좋은 곳이 아닐 수 없지 않은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