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 바람, 사람

푸르구나, 삼척 - 신흥사

아직 오늘 중 2018. 6. 5. 23:26

 

계획에는 없었으나 삼척 관광안내 지도에서 찾은 곳.

 

영화 <봄날은 간다> 촬영지라는 말에 갔는데

우리가 생각했던 대나무 밭은 다른 곳에 있는데다

그곳은 사유지여서 그 곳 주인의 허락이 있어야 들어갈 수 있다는

어떤 블로거의 친절한 글에 우리는 신흥사를 둘러보는 것으로 만족하기로 했다.

 

삼척의 장호항이 시각적으로 푸른 곳이라면

둘러보는데에는 십여 분이 걸리지 않을 것 같은 신흥사는

청각적으로 푸른 곳이었다.

 

 

자그마한 절은 무척이나 고요했는데

기와 시주를 받는 보살님들도 보이지 않고

예불 시간이 지났는지 스님들도 보이지 않았다.

오가며 절을 가꾸고 손보는 스님 한 분만 분주히 조용하게 움직이셨는데

그 조용함이 무척이나 편안했다.

 

 

예쁜 꽃들을 만나며 천천히 절을 둘러보는데

범종이 울렸다.

덩~~~

그 소리를 따라 바람이 불며

나무들이 솨~~~~ 대답하듯 소리를 내자

대웅전과 삼신각 처마 끝에 달리 풍경들이

달랑달랑

청아한 소리를 냈다.

한번 더 울리는 범종을 따라

다시 또 풍경이 울리고

그 풍경의 끝에 뻐꾸기가 울었다.

잘 있어, 잘 있어

숲 속의 안부라도 전하는 듯 울던 뻐꾸기는

범종의 소리가 멈추기 얼마 전 사라졌다.

 

범종의 소리가 절을 빠져나가자

바람 역시 멈추며

잡고 있던 내 발걸음을 슬며시 풀어주었다.

 

그 푸른 소리들이 너무도 좋아

그늘에 슬그머니 앉아 있자

범종을 치고

삼식각 재단에 올렸을 물을 버리시던 스님이

커피를 한잔 주시겠다며

우리를 공양간으로 이끄셨다.

 

 

진하면 물을 조금 더 넣으라는 말씀만 주시고는

우리가 편하게 마실 수 있도록 나가버리시는,

조용한 사찰에 어울리는 스님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고요함마저 푸르고 푸르던

작은 절, 신흥사.

찾은 이의 마음을 깨끗하게 고요함으로 씻어주었으니

정말 좋은 곳이 아닐 수 없지 않은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