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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절과 문예창작

아직 오늘 중 2016. 1. 19. 12:06


문예창작과에서 고시 공부하듯 심사위원 성향에 맞는 모범답안을 필사해 등단의 문턱을 넘으면 해당 출판사에서 책을 홍보해주고 소속 문예지에서 칭찬해준다. 신문사를 통해 등단한 이 역시 마찬가지다. 문학담당기자가 등단 심사위원을 선정하고 출판 기사를 쓰는 것 역시 문학 기자들이기 때문이다. 

이 카르텔 안에 들어가지 못한 ‘등단 고시생’들은 카르텔 외부에서 문학하기 어렵다는 현실을 깨닫고 문학판을 떠난다. 한 때 문인을 꿈꿨다가 홍보회사, 영화계 심지어 아예 체념하고 법조계로 진출하는 문창과 학생들이 많은 것은 우연이 아니다. ‘소수의견’의 작가 손아람은 ‘한국문단의 구조를 다시 생각한다’ 좌담회에서 “비문학출판사에서도 원고를 검토할 때 필자의 등단 여부를 따지고 신문사가 칼럼니스트를 고를 때 그 사람이 어느 매체로 등단했는지 따진다”며 “이 질서에는 상류와 하류가 있고 상류에 있다는 사실 자체가 많은 작가에게 충분한 보상이 된다”고 지적했다. 

권력은 책임지지 않고 남을 탓한다. ‘표절사태 이후 한국문학’ 대담에서 김영찬은 윤지관을 “생각이 조금 다른 사람”으로 규정하며 “한국문학의 침체원인을 문학권력에 있다고 한데에는 언론의 역할도 있다”고 비판했다. 그는 “문학권력만 해체되면 모든 것이 해결될 것처럼…”이라며 불만을 드러냈다. 문학권력의 해체는 해결책이 아니라 문제 해결의 시작이다. 이후 문학의 다양성을 확보하고 그간 떠났던 능력있는 예비작가를 발굴해야 한다. 

작가 손아람도 “등단제도를 입시제도로 본다면 수능을 학력고사로 바꾸는 식의 처방은 아무의미가 없다. 입시를 폐지하고 대학을 보편 교육화하자는 차원의 문제”라고 문학동네 대담에서 문학권력의 실체조차 부인하는 자들을 비판했다.



2015년 9월 19일자 미디어 오늘의 기사 일부분이다.

신경숙 표절사태는 작년 한 해의 커다란 이슈 중 하나였고

분명 많은 시사점을 보여주었다.

그에 대한 비판적 목소리가 나올 때마다 붙어나오는 비판의 대상이 문예창작과이다.

그 이유를 찾아보면 기술에 대한 전수라는 거부감이 큰 듯하다.

위 기사에서도 "문예창작과에서 고시 공부하듯 심사위원 성향에 맞는 모범답안을 필사해~"라면서 문예창작과를 꼭 집고 있는데

그렇다면 모든 문예창작과 등단작가들은 저렇게 하고

다른 학과 출신 등단작가들은 단 한 명도 저렇게 하지 않는다는 건가.

일일이 확인 과정을 거친 발언인 것인지 무척 궁금하다.

문예창작과의 커리큘럼을 확인은 한 것인지.

카더라의 가담항설만 믿고 문예창작과를 싸잡아 비판하는 것은 아닌지.

황석영 작가 역시 요즘 문단의 모든 문제가 문예창작과 출신 작가들에게만 있는 것처럼 이야기하지만

정말 문예창작과 출신의 작가들과

문예창작과만 없어지만

이 문단은 다시 청정의 지대로 돌아갈 수 있는 것일까.

그렇다면 그 청정의 시기는 언제였는지

자신있게 이야기할 수 있는가.

고민은 얕고 비판의 목소리만 큰 것은 아닌지

정말 문예창작과 하나만 때려잡으면

이 문학의 현실이, 문학이 처한 문제가 해결되는 것인지

남들따라 손가락질 하는 사이, 정말 더 근본적인 문제에 대해서는 고민하지 못하는 것은 아닌지

생각해봐야하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