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 바람, 사람

영주 <소수 서원, 선비촌>

아직 오늘 중 2010. 11. 27. 20:48

 

영주의 첫날밤은 <소수서원> 옆에 있는 선비촌에서 숙박체험을 했다.

원래는 아침밥상을 방으로 들여주는 숙박체험을 원했었지만

평일에 묵는 관계로 일반실을 써야했다.

위의 약탕기들은 우리 방이 있었던 채 앞에 놓여 있었다.

 

 

아침 여덟시가 조금 넘은 이른 시간부터 일하시는 분들의 손이 바빴다.

정말 오랜만에, 기억 속에 아스라한 지붕 잇는 모습.

일하시는데 사진을 찍는 게 죄송해 얼른 후딱~ 찍었다.

동터오는 뒷산을 바라보고 계시는 십이지신들.

 

그 날 아침은 이렇게 서리가 하얗게 내려있었다.

 

 

이 곳에 들어갔다가 사랑방 앞에서 깜짝 놀랐는데

갑자기 아이의 글 읽는 소리가 났기 때문.

방 안에 만들어 놓은 동자 인형에 센서가 있어서인지 기척이 느껴지면 자동으로 소리가 나왔다.

아버님 날 낳으시고 어머님 날 기르시니~~~~~

 

하지만 선비촌의 아침은 배가 고팠다.

일어난 시간은 평소보다 한 시간 조금 못 되게 빨랐는데

평일이라는 이유로 부근 식당들이 모조리 아홉시 반이 넘어야 문을 연다는 ㅠㅠ

 

고픈 배를 부여안고 우리는 소수 서원을 먼저 보기로 했다.

가는 길을 묻는데 웬일이니?

선비촌 매표소의 얼굴 복스럽고 눈 똥그란 아줌마.

너무 귀찮아 하며 땍땍거리듯 알려준다.

네네, 몰라뵈서 죄송하네요.

출근하기 싫으신 거 억지로 출근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영주에서 만난 사람 중 유일하게 불친절하던 아줌마.

떡하니 매표소 같은 데 앉아계시면 안 될 듯 하다.

 

 

우리나라 최초의 사액 서원이라는 <소수 서원>

여기서 새로운 사실을 알았는데 아무나 입학을 하는 것이 아니라

성균관처럼 진사나 생원들만이 입교할 수 있었다고......

 

 

 

옛 정취가 물씬나는 곳들, 학생들이 머물렀다는 청재나 그들의 수업이 진행되던 강론장 등을 둘러보니

여기저기서 유생들이 튀어 나올 것만 같은 것은 분명 드라마의 후유증이겠지?

그래도 사람없는 평일 오전에 서원을 감상하는 일은 즐거웠다.

소수 서원 뒤편에 자리한 거북 모양의 동산. 굵직굵직한 소나무들이 둥그렇게 자리를 마련하여 운치가 있었다.

 

소수서원이 자리한 강가 건너편에는 경(敬)자 바위와 정자가 있었다.

이 홍자 바위는, 계유정난 이후 단종의 복위를 꾀했던 경북 지역 유생들이 수장 된 이 강물에 얽힌 전설을 가지고 있었다.

귀신들의 울음소리가 하도 들려서 이 황 선생께서 직접 바위에 글을 쓰고, 붉은 색으로 칠했더니 울음 소리가 사라졌다는 곳.

아마도 이 곳 선비들의 지조와 절개를 보여주는 곳이리라.

하지만 민들레 홀씨들은 날아가지도 못하고 이렇게 노랗게 쇠어버렸다.

그래서 얘네들은 사군자에 들지 못하나?

하긴 모진 목숨 이어가는 민초들의 삶을 대변하기 일쑤인 민들레이고 보니

모진 목숨 연명도 어려운데 어찌 도며 대의를 내세우겠는가, 싶기도 했다.

 

 

밥을 먹고 왔다면 덜 추웠을텐데,

은근히 옷 속으로 파고 드는 찬기운에 유난히 더 배가 고팠다.

평일 오는 관람객들에 대한 배려가 부족한 걸 빼면

더없이 좋은, 고풍스러운 아침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