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다, 듣다, 읽다

영화 <돈 크라이 마미>

아직 오늘 중 2012. 12. 4. 16:06

토요일, 사소하게 꼬여버린 약속으로 보게 된 영화.

 

고교생들의 성폭력 문제를 다루었다고 했고

부지런한 한 기자의 영화 리뷰에 가까운 기사도 본 터라

많은 기대감은 없었다.

 

영화의 메시지는 좋았다.

피해자도 미성년자고, 가해자도 미성년자인데

가해자들의 미래만 보장받고

그들의 인권만 중시되는

이상한 우리나라의 법은, 특히 성범죄와 관련된 법은 개선의 여지가 많다는데 심히 동의하는 바이다.

하지만 그런 법때문에

개인적인, 엄마의 복수가 시작된다는 스토리를 위해

영화는

너무 많은 바보들을 만들고

너무 많은 개연성들을 무시해버렸다.

 

딸이 좋아하는 남학생을 관대하게 이해하고

잠자리 한 번 했다고 결혼에 목매지는 말라고 개방적으로 딸과 친밀감을 쌓는 엄마.

그런데 그 엄마가

성폭행을 당한 딸아이가 자신은 더럽다고 말 하는데

그저 아무 말도 못 한다.

증거가 없어서 법정에서 패소하다시피 했는데

딸아이는 남자애들이 보내온

자신이 성폭행 당하는 장면을 담은 동영상이 인터넷에 퍼지는 걸 막기 위해

그들의 집으로 찾아고 또 폭행을 당하고

또 동영상 촬영을 당한다.

 

그 아이가 폭행을 당하고, 법정에 서고, 다시 협박을 당하고

이어지는 폭력 앞에 무기력하게 무너지고 자살하기까지

경찰이 하는 일은 아무 것도 없다.

오히려 경찰은 무기력하게

피해자의 부모에게 합의할 것을 종용하고

피해자 조사(?) 과정에서

피해자가 피해를 당하는 것이 합당(?)하다고 보아야할지를 따지는 듯한

질문들만 던진다.

기막힌 질문이 그거였는데

성관계 경험은, 없겠죠?

도대체 그딴 걸 왜 묻는 건지.....

성경험이 있는 여학생은 성폭행을 당해도 싸고, 몸을 파는 창녀에게 성폭행은 성립이 안 된다는 건지.....

더 열받는 건 그게 또 우리나라의 현실이라는 것.

 

어쨌거나

우울증과 무기력증에 빠진 딸아이를 심리치료도 없이 그냥 방치해 둘만큼

그 엄마가 어리석은, 꽉 막힌 엄마였는가?

영화를 망치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 동호가 맡은 캐릭터 역시

그 동영상을 통해 돈을 버는 정말 나쁜 아이였는가?

이혼을 했어도 아빠는 아빠인 건데

딸이 폭행당하고 자살할 때까지 아빠는 왜 그 사실들을 전혀 모르고 있는 건가.

친구라는 그 아이는 왜 동호의 정체에 대해 사실대로 말해주지 않은 건가.

그 친구도 동호 패거리에게 협박을 당하고 있었던 건가.

 

뼈대만 앙상한 줄거리를 따라 말하고 싶은 내용만 남겨 놓은 채

한시간 삼십분이라는

근래 보기드문 짧은 런닝타임을 지루함 없이 잘 채워놓기는 한 영화.

 

십대 청소년들의 지능적인 범죄와

타인의 아픔이나 공포를 즐기는 아이들의 폭력성을 좀 더 객관적으로 잘 보여줄 수도 있었을텐데

미친 존재감을 보여주어야할 장면에서

국어책을 읽어버리며

영화의 맥을 끊어버리는 동호의 캐스팅은

남보라의 연기가 무척 훌륭하다는 생각을 갖기에 밑바탕이 될지는 모르겠으나

전체적인 영화에서는 정말 마이너스였다.

미스 캐스팅이라는 말조차도 아까운 미친 캐스팅.

혹시 앞으로도 동호가 연기를 할 거라면

연기 선생님을 국어책말고, 살아있는 사람으로 정했으면 좋겠다.

 

메시지는 있으나

서사는 무척이나 빈곤했던 영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