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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집 <김수영 전집 - 시>

아직 오늘 중 2011. 12. 4. 20:19

절망

 

풍경이 풍경을 반성하지 않는 것처럼

곰팡이 곰팡을 반성하지 않는 것처럼

여름이 여름을 반성하지 않는 것처럼

속도가 속도를 반성하지 않는 것처럼

졸렬과 수치가 그들 자신을 반성하지 않는 것처럼

바람은 딴 데에서 오고

구원은 예기치 않은 순간에 오고

절망은 끝까지 그 자신을 반성하지 않는다.

 

                                                                                               <1965.8.28>     민음사, 2011년

 

 

김수영의 시들은 정말 아름답다.

나 자신을 부끄럽게 하는

강인하고 낮은 목소리로 자신의 치부를 먼저 드러내보이는

그 시들은

무척 아름답다.

아름다워 보는 사람을 부끄럽게 만드는.

정직하고 그래서 건강한 아름다움.

 

요즘은 늘 그 구절을 반복해 본다.

 

모래야, 나는 얼마큼 작으냐.......